스위스 가방제조업체가 선보인 ‘유혹의 기술’
김경자 교수의 探스러운 소비
21세기 소비자는 특별한 스토리에 감동하고, 지갑을 연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재료를 사용해 하나하나의 가방을 다르게 디자인하는 프라이탁 제품은 요즘 소비자가 기꺼이 돈을 쓰는 ‘새로움’과 ‘특별함’이라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 꽃자주색의 멋진 샤넬 가방이 있다. 몸체에는 샤넬 로고가 선명하고 재료는 물론 손잡이와 버튼 하나하나까지 고급스러움이 가득하다. 단 하나 문제는 가격이다. 여기 또 다른 가방 스위스의 프라이탁(Freitag)이 있다. 전생前生이 트럭용 방수 덮개였던 이 가방은 트럭용 방수천로서의 할 일을 끝내고 가방으로 새 생명을 얻은 후에도 완벽하게 깨끗해 보이지 않는다. 가방에서는 화학약품 냄새가 나고 어깨끈은 알고 보면 폐차에서 뜯어낸 안전벨트다.
각 가방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을 입혔다지만 고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이 가방은 매년 전 세계에서 20만개가량 팔린다. 제법 가격이 나가는데도 그렇다. 영국의 페이퍼싱스(Paperthinks)도 장갑이나 재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가죽을 재활용해 가방이나 지갑 등을 만든다. 환경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염색해 전형적인 고급 가죽처럼 보이지 않지만 100% 재활용 가죽이라는 표시를 브랜드 네임처럼 자랑스럽게 달고 팔린다.
사람들이 비싼 명품 가방을 사는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을 명품의 품질과 이미지를 통해 포장하기 위해서다. 자신이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세련된 취향과 안목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쓰레기로 만든 가방이나 재활용 가죽가방을 많게는 수십만원씩 주고 사는 사람의 심리는 어떤 것일까. 프라이탁의 사례를 분석한 많은 연구는 소비자들이 프라이탁을 선택하는 이유가 친환경적 생산방식에 공감해서라기보다 제품이 담고 있는 특별한 스토리에 공감해서라고 주장한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의외의 재료를 사용해 하나하나의 가방을 다르게 디자인하는 프라이탁 제품은 요즘 소비자가 기꺼이 돈을 쓰는 ‘새로움’과 ‘특별함’이라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인류의 공통문제로 대두되면서 지속가능한 소비(sustainable consump tion)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본격적으로 논의된 건 1990년대 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한 심포지엄(1994)에서 미래를 위한 행동양식의 하나로 지속가능한 소비를 제안하면서 많은 나라가 녹색생산과 소비를 국가적인 정책어젠다로 채택하고 다양한 녹색소비 실천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리사이클(Recycle)은 녹색소비의 대표주자로 꼽혀온 소비방식이지만 환경에 대한 관심만으로 소비자를 리사이클 패션(Recycle fashion)으로 끌어들이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환경에 대한 관심이 우리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알려진 유럽에서도 지속가능성을 지향한 소비는 여전히 초기단계다.
녹색소비의 한 축인 리사이클 패션을 확산시키려면 스토리와 디자인의 힘이 중요하다. 소비자는 트럭방수천으로 가방을 만든 프라이탁이나 자투라기 가죽을 가루내어 새로운 가죽을 만들어낸 페이퍼싱스의 노력과 용기를 높이 산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상하고 촌스럽던 디자인이 아름답고 특별하게 보이고 그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도 특별함의 일부가 된다. 진정한 리사이클을 위해 우리가 매일 내다 버리는 수많은 낡은 것에 대한 우리의 낡은 인식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김경자 가톨릭대 소비자학과 교수 kimkj@catholic.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