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비자금, 이 요상한 괴물

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2015-03-31     김우일 대우M&A 대표

기업의 검은돈인 ‘비자금’을 없애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비자금을 조성한 경영자를 일벌백계하면 된다. 또한 비자금을 혼자 만들 수 없으므로 ‘내부고발제도’를 탄탄히 하면 ‘검은돈’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

국민기업 포스코가 강도 높은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수사방향은 비자금이라는 요상한 괴물이다. 기업경영에 있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비자금秘資金. 일단 한문 풀이부터 해보자. 비자금의 비는 은밀한 비秘로, 보일 시示와 반드시 필必의 합성어다. 은밀하게 숨긴다는 뜻의 비자금秘資金은 이처럼 ‘반드시 보인다’는 뜻이 함유돼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비자금으로 인한 병폐가 있어왔고, 이를 경고하기 위해 비秘라는 한자를 만들었을지 모른다. 수십년 동안 ‘정글경제’에서 살았던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경영자가 비자금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나긴 불가능하다.” 필자 생각만일까. 대한민국 기업 중 비자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자금이 만연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라고 말이다.

첫째는 사회분위기다. 기업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에게 밉보이지 않아야 한다. 잘못 보였다간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비자금이라는 적당한 현금은 경영에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 둘째는 경영자의 착각이다. 기업과 경영자는 엄연히 서로 다른 권리의무주체다. 그럼에도 경영자는 기업을 자신의 맘대로 주무르는 소유물로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기업의 공동자산을 자신의 소유자산으로 빼내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지는 거다.

셋째는 엄격한 회계와 세무규칙이다. 예전엔 영수증이 없어도 ‘기밀비’라는 명목으로 일정한 금액까지 비용으로 인정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업무와 무관한 비용을 철저하게 감시하는 시스템이 정착됐다. 하지만 이는 비자금을 더 깊숙한 곳으로 밀어넣었다. 더욱 은밀하게 만들지 않으면 큰코다치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엄격한 기업경비수칙을 반대하는 건 절대 아니다.]

자! 이제 비자금을 조성하는 웃기는 사례를 살펴보자. 어느날 A그룹 총수가 필자에게 쪽지를 보여주며 물었다. “이게 무엇인지 알겠어?” 그 쪽지엔 나폴레옹ㆍ하트ㆍ임페리얼ㆍ뉴욕ㆍ그린하우스 등 수십개의 영어단어가 쓰여 있었다. 필자는 물었다. “이게 뭡니까?” 총수는 웃으면서 “나도 몰라. 계열사를 조사해봐”라고 말했다. 꼼꼼하게 조사해보니, 그 쪽지는 유흥시설의 가짜 세금계산서였다. 이런 계산서로 비용을 처리하며 빼돌린 비자금이 1년 동안 500억원에 달했다. 영업이익률을 5%로 가정했을 때 500억원은 1조원의 매출을 올려야 거둘 수 있는 액수였다. 그만큼 기업에 미치는 악영향이 컸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어야 할 건 비자금을 조성한 기업은 예외 없이 망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비자금이라는 용어를 기업경영 사전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묘책은 없을까. 당연히 있다. 비자금을 조성한 경영자를 일벌백계하면 된다. 솜방망이 처벌을 하니까 비자금 조성이 반복되는 거다. 또한 기업회계세무시스템을 더욱 확고하게 구축해야 한다. 비자금 조성은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내부고발자’ 제도를 탄탄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경영 사전에서 비자금이라는 용어가 사라지는 날, 우리 기업문화가 ‘선진화’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김우일 대우M&A 대표 wikimokg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