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은 돌아오지 않았다

포스마주어 | 화이트 베케이션

2015-03-25     손구혜 문화전문기자

늘 회사일에 쫓기는 남편 토마스는 오랜만에 가족과 휴가를 즐기기 위한 여행에 나선다. 아내 ‘에바’, 딸 ‘베라’, 아들 ‘헤리’와 함께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둘째날 야외식당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토마스 가족. 순간 산꼭대기에서 엄청난 양의 눈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하고 가족들은 진짜 눈사태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런데 위에서 쏟아진 눈은 엄청난 굉음을 내며 식당으로 돌진하고 아내와 아이들은 공포에 휩싸여 토마스를 찾는데….

‘포스 마주어(Force Majeure)’는 불가항력,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저항 할 수 없는 힘이라는 뜻이다. 영화에서는 찰나의 순간 인성으로 통제하기 힘든 본능의 강력한 힘을 의미한다. 주인공 토마스는 눈사태로 인해 가족의 목숨이 위협받는 순간 가족을 버리고 혼자 도망치는 본능을 선택한다. 영화 ‘포스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은 누구도 상상하고 싶지 않은 상황, 자신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상황으로 관객을 몰고 간다. 영화는 위급한 상황에서는 가족을 먼저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아버지’와 ‘남편’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는 주인공의 선택을 통해 관객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가장의 책임감보다 순간의 생존 본능에 충실한 주인공을 내세워 관객에게 ‘만약 나였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느 누구도 예외라고 할 수 없을 불가항력적인 순간 살고자 하는 본능과 가족 가운데 무엇을 택할 것인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순간 이성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 있는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가족 대신 생존본능을 선택한 남편을 아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런 아버지를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등의 현실적인 물음을 풀어내며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관객은 성별에 따라 혹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남편 토마스와 아내 에바 두 인물에 자연스럽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누군가는 토마스의 행동을 비난하지만 다른 사람은 본능적으로 행동한 자신을 원망하는 토마스의 괴로움을 이해하고 수긍할 것이다. 이런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 ‘에바’의 행동 역시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족을 외면한 가장

최근 흥행 돌풍을 일으킨 ‘국제시장’ ‘인터스텔라’ 등을 통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가 대세로 자리 잡은 국내 영화계에 ‘포스 마주어: 화이트 베케이션’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인간으로서의 본능적인 선택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정반대로 대치하고 있어서다. 영화는 불가항력적인 재난을 겪고 자신과 가족을 버리고 본능을 따른 남편과의 갈등으로 결속력을 잃어버린 가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관객에게 재미와 공감을 선사할 것이다. 무엇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본능적인 선택과 책임에 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손구혜 문화전문기자 guhson@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