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법원의 엇박자, 백범이 운다

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2015-03-18     김우일 대우M&A 대표

100만원만 받아도 처벌을 받게 만든 김영란법. 위헌논란을 떠나 이 법이 제정될 수밖에 없는 세상이 어처구니없지 않은가. 여기 백범 김구 선생의 비화秘話가 있다. 추악한 일이 난무하는 요즘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속칭 ‘벤츠 여검사’가 혐의를 완전히 벗었다. 대법원은 12일 내연남으로부터 사건 청탁과 함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벤츠 여검사 사건’의 장본인 L 전 검사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정의’의 최후 보루라는 법원이 최근 제정된 ‘김영란법’과 엇박자를 낸 꼴이다. 은밀하게 벌어지는 세태를 국민여론을 아랑곳하지 않고 덮어버린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벤츠 여검사’ 무죄를 보면서 오로지 민족의 독립만을 위해 목숨을 바친 백범 김구 선생의 비화가 떠오른다.

김구의 상하이上海임시정부는 독립운동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변변한 수입처가 없어 국내 거부들의 성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경주에는 K씨라는 김구 선생의 자금책이 있었는데, K씨는 절친한 친구인 경주거부 C씨가 보낸 독립자금으로 김구 선생을 돕고 있었다. 그러나 독립자금을 C씨에게 부탁하기 미안해진 K씨는 꾀를 냈다. 강도로 위장해 C씨 방에 침입한 후 칼로 위협해 돈을 빼앗아 달아난 것이다. C씨는 몸집과 몸고리로 그 강도가 친구 K씨인 줄 알아챘지만 모른 척했다.

그러면서도 C씨는 K씨가 못마땅했다. 돈벌이를 제대로 못해 생활이 어려운 K씨가 가끔 술을 먹고 돈을 썼기 때문이었다. C씨는 “저 돈이 어디서 난 걸까”라고 궁금해했지만 자신이 건넨 독립자금의 일부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절친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K씨는 해방 1년을 앞두고 영양실조로 병사했다. 해방 후 귀국한 김구 선생은 매달 필요한 독립자금을 기부해준 국내 유지들을 경교장으로 초청했다. 그 자리에 초청을 받은 C씨는 ‘이때다 싶어’ K씨에게 전달한 독립자금의 명세서를 지참해 상경했다. 경교장에서 김구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독립자금책이던 K씨가 1년 전 병사했다니 무척 안타깝습니다. 그분이야말로 우리 임시정부의 필요한 자금을 군말없이 마련해 주셨습니다. 대부분의 국내 거부는 자금책을 일본경찰에 밀고해 곤경에 빠뜨렸는데, 여기 계신 C씨와 K씨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때 C씨가 입을 열었다. 친구 K씨가 자신이 준 독립자금을 100% 전달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C씨 : “제가 그동안 K씨를 통해 김구 선생에게 보낸 자금의 명세서입니다.”
김구 : “아! 그렇습니까. 저도 K씨로부터 받은 10년간의 명세표와 운용증빙서가 있습니다.”

김구 선생은 낡은 가죽가방에서 서류를 끄집어냈고 C씨에게 보여줬다. 그러자 C씨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명세표와 K씨가 전달한 운용표가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운용표에는 윤봉길 거사자금 등 상세한 지출내역까지 적혀 있었다. 경주로 내려온 C씨는 친구 K씨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회환의 눈물을 흘렸다. 친구를 의심한 죄, 친구를 도와주지 못한 죄, 더 많은 독립자금을 내놓지 못한 죄 때문이었다.

공직자가 100만원을 누군가에게 받으면 대가성을 불문하고 처벌한다는 ‘김영란법’. 이 법을 만들어야 하는 세태를 지하에 있는 김구 선생과 자금책 K씨, 경주거부 C씨는 어떻게 생각할까.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김우일 대우M&A 대표 wikimokg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