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판 좀비 2년새 더 늘었다

통계로 본 좀비기업의 실체

2015-03-03     박용선 기자

채권은행의 금융지원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이 늘고 있다. 당연히 정상기업의 고용과 투자는 위축되고, 한국경제는 역동성을 잃는다. 자원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산업별로 보면,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조선과 건설업에서 좀비기업 비중이 높았다. 좀비기업에 대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등 구조조정이 시급하다.

건설업체 A사. 이 기업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건설경기 불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시장엔 유동성 위기설도 수차례 떠돌았다. 자산 비중이 높아 이를 담보로 이자비용 등 운영자금을 조달하고 있지만 여전히 금융비용을 갚는 게 벅차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지원으로 명命을 유지하는 ‘좀비기업’이 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부실기업 구조조정 지연의 부정적 파급효과’ 보고서에 따르면, 좀비기업 비중(자산 규모 기준)은 2010년 13%에서 2013년 15.6%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기업 수 기준으로 보면, 12.1%에서 12.7%로 늘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좀비기업을 금융지원을 받는 잠재 부실 또는 한계기업으로 규정했다. 잠재 부실기업이란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감당하는 비율)이 1 미만인 기업을 뜻한다.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번 돈으로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별로 보면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조선업과 건설업에서 좀비기업 비중이 높아졌다. 조선 등 운송장비업은 2010년 좀비기업 비중이 7.1%에서 2013년 26.2%로 무려 19.1%포인트 증가했다. 같은 기간 건설업은 26.3%에서 41.4%로 늘었고, 기계장비업은 8%에서 11.5%, 서비스 기타산업은 14.3%에서 15.5%로 증가했다. 정대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지원으로 부실기업의 퇴출이 지연되는 경우 이들 좀비기업이 한정된 시장수요를 잠식한다”며 “노동ㆍ자본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해 정상기업의 고용과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채권은행, 무조건적인 지원 관행 없애야

산업 내 좀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할수록 정상기업의 고용ㆍ투자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정 연구위원은 한 산업의 좀비기업 자산 비중이 10%포인트 높아질 경우 해당 산업에 속한 정상기업의 고용증가율과 투자율은 각각 0.53%포인트, 0.18%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그 결과, 현재 자산기준 15.6%인 좀비기업 비중을 5.6%로 10%포인트 낮추면 정상기업의 고용을 약 11만명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정 연구위원은 현재와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은 1990년대 초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상업은행이 자본적정성을 우려해 정상기업 여신을 축소했다. 반면 부실기업은 대출기간 연장, 이자면제 등을 통해 자금 지원을 확대했다. 그 결과 좀비기업 비중이 버블 붕괴 이전 4~6%에서 1990년대 후반 14% 수준으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생산성이 낮은 기업 퇴출을 막았기 때문에 정상기업의 고용과 투자가 위축됐고,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좀비기업이 연명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채권은행은 자체적으로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C등급 기업(부실징후기업)을 걸러내고, 그 기업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채권단은 이후 기업을 살리기 위해 신규 자금을 지원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기업 실적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워크아웃 신청은 오히려 감소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워크아웃 신청률을 보면 2010년 80% 후반대에서 2011년 73.33%, 2012년 54.55%, 2013년 46.67%, 지난해 33.33%로 떨어졌다. 좀비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 구조조정이 진행되거나, 금융기관 자금 지원이 끊겨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는 금융기관의 구조적 한계와 정치적 외풍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채권은행은 부실, 한계 기업에 무한정으로 자금을 지원하지 않는다. 은행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은행은 건전성 관리보다 성과평가체계(KPI) 등을 의식해 여신관리를 느슨하게 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신기업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경우, 직원 성과평가체계에서 불이익이 생기기 때문에 워크아웃을 신청하지 않아도 대출 상환 유예 등을 통해 자금 지원에 나서는 것이다.

채권은행의 신용평가, 재무예측평가 능력이 부족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김헌수 순천향대(금융보험학) 교수는 “한국 금융기관은 신용평가, 사업평가 등 심사 능력이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 비해 떨어진다”며 말을 이었다. “국내 금융기관의 경우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다. 특히 여신관리 측면에서 보면 경쟁보다는 현 상황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은행의 지배구조상 한계도 존재한다. 일반 제조기업처럼 오너가 분명히 있는 지배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최고경영자가 책임을 지고 이익을 내기 위해 여신관리를 강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비기업 퇴출 → 혁신적인 기업 등장

또 다른 이유는 정치적 외풍이다. 재계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똑같이 재무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어떤 기업은 채권은행이 자금을 지원해 살아나고, 어떤 기업은 반대로 산산조각 난다. 단순히 실무자의 판단보다 더 큰 외부적인 힘이 작용해 금융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다. 보통 정치적인 힘을 말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우리 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단체 행동을 하는 것도 포함된다.” 기본적으로 부실기업 퇴출이 자유롭지 못한 시장은 비효율적이다. 김헌수 교수는 “좀비기업이 연명하면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이 커지고 한국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좀비기업의 금융지원 관행을 개선해 퇴출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창의적인 기업이 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