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하락세, 내년 6월이 분기점”
국제유가 전문가 9人에게 물었다
2014-12-09 박용선 기자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 국제 유가를 두고 나오는 말이다. 12월 3일 현재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69.92달러로 떨어졌다. 105달러를 넘나들던 상반기와 비교하면 33% 하락했다. 같은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67.38달러로 떨어졌다. WTI가 60달러대로 뚝 떨어진 것은 2010년 이후 처음이다.
유가가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요인은 수급 불균형이다.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는 얘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석유수출국기구(OPEC) 12개 회원국의 올 10월 하루 평균 석유 생산량은 최근 1년 동안 최고치인 3050만 배럴을 찍었다. OPEC은 전 세계 석유 공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12개 회원국은 사우디아라비아ㆍ쿠웨이트ㆍ아랍에미리트연합ㆍ카타르ㆍ이란ㆍ이라크(이하 중동)ㆍ나이지리아ㆍ리비아ㆍ알제리ㆍ앙골라(이하 아프리카)ㆍ베네수엘라ㆍ에콰도르(이하 남미) 등이다. 비非OPEC 산유국의 석유 생산량도 증가했다. 특히 미국이 눈에 띈다. 미국의 평균 석유 생산량은 2012년 9월 650만 배럴에서 2013년 9월 775만 배럴로 19.2% 증가했다. 올해 9월 역시 886만 배럴로 생산량이 늘었다.
전문가들은 “OPEC이 유가를 떨어뜨려 한동안 손해를 보더라도 현재 성장하고 있는 미국 셰일 에너지업체를 견제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1985년 겪은 ‘3차 석유 위기(Oil Crisis)’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당시 OPEC은 30달러 안팎에 머물던 유가를 1990년대 후반까지 10달러 초반대로 떨어뜨려 북해 유전업체를 굴복시켰다.
1985년 이어 ‘석유 위기’ 오나
이번 타깃은 미국 셰일 오일 생산업체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유가 하락→미국 셰일 에너지업체 투자금액 감소→셰일 오일 생산량 둔화→수요>공급→사우디, OPEC 원유 생산량 확대→유가 재상승.” OPEC은 지금까지 국제 유가를 좌지우지해왔다. 그러나 2010년 미국 셰일 오일이 등장했고, 이후 세계 에너지시장에 ‘셰일 바람’이 불었다. 그 기세는 OPEC을 이끄는 사우디까지 떨게 만들 정도로 무섭다.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량은 2011년 130만 배럴, 2013년 350만 배럴로 증가했다. 2015년에는 450만 배럴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패권을 쥔 OPEC의 파워는 과거에 비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자 셰일 오일 대응에 나선 것이다. ‘OPEC의 전통 석유 vs 미국 셰일 오일’의 전쟁이다. 실제로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11월 27일 OPEC 회의에서 “미국 셰일 붐을 꺾어야 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셰일 오일의 생산 단가가 전통적인 석유 생산 단가에 비해 비싸기 때문에 유가를 그 밑으로 떨어뜨리면 미국 셰일 에너지업체가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말한다. OPEC의 석유 생산 단가는 평균 20~40달러 수준이고, 셰일 오일은 65~70달러다. 가격으로 싸우면 셰일 오일이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석진 이석진원자재해외투자연구소 소장은 “석유의 경쟁력은 생산 단가에 있다”며 말을 이었다. “셰일 오일과 전통적인 사우디의 석유 중 어떤 게 싸고 오래 버틸 수 있냐의 문제다. 더 말할 것 없이 사우디와 OPEC이 유리하다.” 이석진 소장은 “셰일 오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새로운 에너지원이 개발되면 석유 시장을 교란할 것이고 결국 OPEC은 먹거리가 없어지게 된다”며 “이에 대한 공포감으로 OPEC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액션을 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통적인 원유에 대적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낸 게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김두언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중요한 포인트는 미국이 원유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에너지 전쟁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설비투자 부분이다. 그중 석유 채굴, 광물 분야의 투자가 늘고 있다. 미국 리쇼어링(reshoringㆍ기업이 해외로 진출했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는 것)이 과거처럼 1~2차 제조ㆍ가공업이 아니고, 에너지 혁명을 일으키는 제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은 OPEC 입장에선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은 2009년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 이후 에너지 독립을 선언, 적극적으로 에너지 개발에 나서고 있다. 미국 가스ㆍ오일 개발 사업의 GDP 성장 기여도를 보면, 2008년 0.03%에서 2013년 0.22%로 증가했다.
수요 측면에서 보면, 글로벌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석유 사용량 감소를 유가 하락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중국 등 세계 석유 수요 증가를 주도한 신흥국 경기회복 지연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1980년대 수요 측면에서 유가 상승 요인은 선진국의 경기였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신흥국으로 넘어왔다. 올해 신흥국의 하루 원유 소비량은 4600만 배럴로 선진국(4500만 배럴)을 넘어섰다. 특히 하루 1100만 배럴을 사용하는 중국의 GDP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은 정부 목표치(7.5% 안팎)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OPEC vs 美 셰일 업체 ‘한판승부’
그렇다면 유가의 ‘바닥’은 어디일까. 우선 시장은 30~40달러를 내다봤다. 1985년 정도의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거다. 1985년 당시 30달러 안팎에 머물던 유가는 1990년대 후반까지 10달러 초반까지 떨어졌다. 60~70% 빠졌다. 올 상반기 기준 유가를 100달러로 잡고, 60~70% 떨어진다고 가정하면 유가는 30~40달러까지 하락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계산대로라면 OPEC 회원국이 버티지 못할 공산이 크다. OPEC 회원국은 국가 재정 대부분을 석유 판매 수입에 의존한다. 유가가 하락하면 재정이 버티지 못한다는 얘기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사우디는 연평균 유가가 87.6달러를 유지해야 재정수지 흑자를 낼 수 있다. 이란은 143달러, 리비아 99.6달러, 이라크 93달러, 아랍에미리트연합 66.5달러, 쿠웨이트는 58달러가 균형재정에 필요한 적정 유가다. 30~40달러까지 유가가 떨어지면 OPEC 회원국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할 것이고, 스스로 자국 경제를 망가뜨리는 일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11월 27일 OPEC 회의에서 석유 생산량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우려될 정도로 재정난을 겪고 있다.
박재철 KB투자증권 연구원은 “셰일 오일의 생산성을 저해시키려면 유가가 40~50달러 수준으로 하락해야 한다”며 “그러나 OPEC도 이렇게 낮은 유가가 지속되면 재정이 버티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재철 연구원은 “사우디와 일부 중동 국가가 재정지출 계획을 수정하고 있지만 현재 지출 규모에서 큰 폭으로 줄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OPEC 국가의 분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정민 연구원은 “회원국 간에 원가 경쟁력(생산 단가)과 재정 건전성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대립이 심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이렇게 되면 셰일 붐으로 위축된 OPEC의 위상이 더욱 약화되고 원유시장 통제 능력도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미국 셰일 에너지업체가 도산할 수 있는 50~60달러가 유가 하락 한계선으로 점쳐진다. 실제로 유가가 셰일 오일 평균 생산 단가(손익분기점)인 70달러보다 떨어지자 회사 문을 닫는 셰일 에너지업체가 속출했다. 한편에선 업계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산 단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OPEC이 적자를 내면서 유가를 계속해서 떨어뜨려도 50~60달러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60달러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유가 하락이 이어질까. 장기적, 단기적인 시각으로 구분된다. 우선 1985년 유가 하락이 10~15년간 이어진 것을 감안하면 장기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된다. 그러나 10~15년처럼 길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저유가 시대가 1980~ 1999년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수요 자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석유 시장 큰손인 중국이 탄생했고,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수요가 대폭 증가한 것이다.
2015년은 50~60달러 중저가 시대
이석진 소장의 설명이다. “저유가 시대가 과거처럼 10~15년 갈 수는 없다. 당시 수요가 바닥인 상태에서 공급만 증가했다면 현재는 수요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셰일 오일 생산 사이클을 3~5년이라고 보면, 3년가량 60~80달러 저유가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이 소장은 현재의 석유 수급 상황을 보면 공급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2015년은 저유가 시대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3년 후인 2018년부터는 과거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급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다시 사우디와 OPEC이 가격 정책을 변경하든지,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유가가 다시 올라갈 수 있다. 이 소장은 “올 상반기 유가가 100달러였는데 이 정도 수준으로 다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강유진 우리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3년가량 유가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경제 사이클을 이유로 들었다. “과거 30년을 주기로 경제 성장과 침체기가 반복됐다. 그런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수요도 크게 증가하다 보니 모든 사이클이 보다 빨라지고 있다. 이제는 10년 주기설을 얘기한다. 유가 흐름도 마찬가지다. 1985년 위기와 같은 요인으로 유가가 떨어지고 회복한다면 그 시기는 과거에 비해 빠를 수밖에 없다.”
단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내년 2분기를 전후로 유가가 바닥을 치고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초과 공급보다는 달러 강세 완화에 초점을 맞춘 분석이다. 2015년 하반기 미국의 금리인상이 가시화된다면 금리인상 이전인 내년 2분기쯤 유가가 바닥을 때릴 가능성이 있다. 박재철 연구원은 “내년 중순에 금리인상 요인에 앞서 달러 강세가 오고 있다”며 “미국의 금리 인상이 현실화된다면 달러 강세가 누그러들고 이후 유가 약세가 주춤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과거 달러와 유가는 항상 역의 관계를 형성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 투자자는 달러에 몰렸고, 대체관계에 있는 석유시장에선 자금이 이탈했다. 이런 현상은 당연히 유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2001년 11월과 2014년 11월 현재의 달러 인덱스와 유가를 비교하면, 유가가 25.16달러에서 70.15달러로 증가한 반면 달러 인덱스는 106.38에서 88.35로 하락했다.
김두언 연구원 역시 내년 6월을 분기점으로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2015년 6월 말 미국 금리인상이 예상돼 달러화 자산으로의 자금 흐름이 신흥국으로 전환될 가능성 크다”며 말을 이었다. “6월 OPEC 회의가 예정돼 있고, 7월 이란 핵협상 타결 시 이란 물량 증가 등 내년 상반기까지 유가가 하락하고 이후 반등할 공산이 크다. 미국을 비롯한 비非 OPEC의 영향력이 상당해 졌고, 미국의 셰일 오일이 수출 가능성이 상존한 상황에서 유가는 2015년 80달러를 넘기는 힘들 것이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