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계좌 옭아매자 뭉칫돈이 쏟아지다

거액예금 인출 왜 늘었나

2014-11-28     강서구 기자

은행에서 거액을 인출하는 자산가가 증가하고 있다. 차명거래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차명계좌 정리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처벌규정이 없던 차명계좌 거래에 강력한 처벌 규정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법이 ‘차명계좌촉진법’이란 불명예를 씻을 수 있을지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11월 29일 ‘차명거래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1억원 이상의 거액 인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국내 10개 은행에서 빠져나간 1억원 이상의 거액 인출 금액이 모두 484조5468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395조6580억원에 비해 22.4%, 88조8888억원 증가한 금액이다. 거액 인출이 늘어난 건 저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예금에 붙는 이자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은행예금 대신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는 상품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은행관계자는 “지난 7월 시장금리가 크게 떨어지자 거액 인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저금리의 영향으로 공모주 등 다른 고수익 상품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험성 상품이나, 수익률이 예금보다 높고 안정성이 보장되는 원금보장형 지수연동예금(ELD) 등에 투자하고 있다”며 “저금리 기조 등 복합적인 원인이 고액 인출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는 의견이다. 자산가들이 ‘차명거래금지법’을 피하기 위해 차명계좌를 정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어서다. 실제로 은행권의 고액 인출은 지난해부터 계속 감소세를 보이다. 지난 6월 전년 동기 대비 7.34%(6조2288억원)의 증가세가 나타난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7월에는 30.57% 금액으로 24조223억원의 증가세를 보였고 ‘8월 36.96%(25조8050억원)’ ‘9월 26.19%(19조5769억원)’ ‘10월 15.13%(13조2559억원)’ 등 이었다.

이는 지난 5월 차명거래금지법으로 불리는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부터다. 29일 시행을 앞두고 자산가들이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분산시켰던 차명계좌를 해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연 2000만원 이상의 이자나 배당소득이 있을 경우 금융소득종합과세를 납부하기 때문에 차명계좌를 계설했다. 또한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 가족과 친지 명의의 통장에 자산을 분산하는 경우도 많았다. 세稅테크를 위해 차명계좌를 이용한 자산가가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명거래금지법’의 시행으로 자금 분산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차명금지거래법에 따르면 탈세 등 불법을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계설할 경우 5년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게다가 차명거래금지법 시행 이후에는 예금이 무조건 명의자의 재산으로 인정된다. 법 시행의 영향과 재산 분쟁을 미리 막기 위한 고액 인출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차명거래금지법의 영향을 묻는 자산가의 문의도 쏟아지고 있다.

은행관계자는 “차명거래금지법에 관한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차명계좌의 예금을 자신의 명의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며 “차명계좌를 이용했던 자산가 가운데 부동산과 금괴를 구입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병두 의원은 “차명거래에 대한 어떤 처벌규정도 없어 금융실명제법이 ‘차명거래촉진법’이란 비판을 받았다”며 “차명거래 자체에 대해서도 불법목적과 연동될 경우 전면금지한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