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덕에 뜨더니 카피 탓에 지려나

승승장구하던 미샤 부진한 이유

2014-11-26     김미선 기자

아모레퍼시픽의 승승장구가 거듭되고 있다. 주가는 물론 실적까지 호황이다. 미샤의 상황은 다르다. 히트브랜드가 적어지면서 주가는 물론 실적도 부진의 늪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미샤의 100% 외주생산시스템이 부진의 이유라고 꼬집고 있다. 생산을 외주에 맡기다 보니, 자체 기술력 확보에 게을렀던 게 아니냐는 거다. 과연 그럴까.

국내 화장품 시장 1위 아모레퍼시픽과 3위 에이블씨앤씨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주가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실적이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어서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3분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22% 늘어난 1조2090억원, 영업이익은 54.6% 증가한 1739억원을 기록했다. 이 그룹이 분기별 매출에서 1조원을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반면 미샤로 유명한 에이블씨엔씨 주가는 하락세다. 11월 11일 에이블씨엔씨 주가는 전일 대비 11.4% 하락한 2만1900원(종가 기준)을 기록했다. 이날 오전 발표된 3분기 실적에 따른 하락이었다. 이 회사의 3분기 영업이익은 8억7800만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4% 줄어들었다.

미샤 100% 외주생산, 독이 됐나

흥미롭게도 두 기업의 ‘희비쌍곡선’은 이들을 대표하는 원브랜드에서도 나타난다. 아모레퍼시픽과 에이블씨엔씨는 2000년 원브랜드숍(중저가 화장품숍) 이니스프리, 미샤를 각각 론칭했다. 2012년까지만 해도 원브랜드숍 시장의 1위는 미샤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LG생활건강(더페이스샵)에 1위 자리를 내주더니,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보다도 낮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미샤의 강점이던 원브랜드숍 부문에서도 경쟁력이 처지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연구개발(R&D) 투자와 제품생산방식에 그 이유가 있다고 꼬집었다.  박나영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미샤는 100% 외부업체에 생산을 맡기고 있지만 이니스프리는 아모레퍼시픽의 자회사 코스비전이 전략제품을 공급한다”며 “미샤와 달리 계열사의 자체 생산시설을 통해 제품을 공급받기 때문에 제품이 카피될 가능성이 적다”고 말했다.

실제로 생산 100% 외주업체에 맡기는 미샤의 사업방식은 ‘흥망성쇠’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시계추를 2012년으로 돌려보자. 미샤는 2012년 드라마틱하게 성장했다. 매출은 전년(3302억원)보다 36.9% 늘어난 4522억원을 기록했고, 영업이익은 536억원이나 올렸다. 2011년 시장에 출시한 ‘더 퍼스트 트리트먼트 에센스’와 ‘나이트 리페어 사이언스 액티베이터 앰플’이 공전의 히트를 친 게 실적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두 제품은 글로벌 브랜드 SK2(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와 에스티로더(나이트리페어 싱크로나이즈드 리커버리 콤플렉스)의 미투 상품이었다.

물론 성분이 다른 것으로 판명됐지만 마케팅 차원에서 ‘미투 전략’을 사용한 건 부인할 수 없다. 미샤가 ‘카피’로 떴지만 이제 ‘카피’ 때문에 질 수 있다는 얘기다. 생산을 외주에 맡긴 게 ‘독毒’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거다. 미샤 관계자는 “대부분 화장품 업체들이 자체 공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주문자상표 부착방식(OEM)을 쓸 수밖에 없다”며 “에이블씨엔씨만 해도 미샤와 어퓨 두개 브랜드에만 3000종 제품이 있는데 이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많은 화장품 회사가 OEM으로 상품을 공급받지만 미샤처럼 100%는 아니다. 또 다른 원브랜드숍 스킨푸드가 전체 상품 중 10%만 OEM 방식으로 생산하는게 대표적이다. 이니스프리 역시 자체 기술력으로 만든 전략상품은 자체 생산한다. 최근 출시한 제품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3월 기존 제품을 리뉴얼해 출시한 ‘더그린티세럼’은 물 대신 100% 생녹차로 만들었다. 아모레퍼시픽 연구팀이 무려 4년간 매달린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
 
채엽한지 1시간 안쪽의 신선한 제주산 녹차잎(무농약)을 30초간 스팀 후 착즙해 넣는 방식이다. 올 1월엔 제주에서 자생하는 난초 ‘한란’의 오킬데릭서 성분을 추출해 만든 제주한란인리치드 크림을 연구를 거듭한 끝에 내놨다. 이 주력 제품들은 모두 아모레퍼시픽 자회사인 코스비전에서 생산하고 있다. 박종대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아모레퍼시픽은 자체 기술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화장품 원가비율을 낮추는 데도 용이하다”며 “회사 입장에서는 좋은 원료를 메스티지 브랜드(대중 브랜드)에 넣더라도 부담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니스프리가 각종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밝혔다.  자체 기술력을 쌓아온 아모레퍼시픽과 100% 외주에 의존한 미샤의 차이는 R&D에서도 나타난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R&D에 총매출의 2.68%(831억원)를 투자했다. 에이블씨엔씨의 같은 기간 매출 대비 R&D투자는 0.57%(22억원)에 불과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하고 있어, R&D 투자를 많이 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달팽이ㆍ상추ㆍ제주 화산송이 등 원료만 봐도 더 이상 새롭게 내세울 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사실 아모레퍼시픽의 ‘R&D 욕심’은 업계 에서 유명하다. 이미 1954년 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개설했다.
 
1992년엔 연면적 1만7200㎡(약 5200평) 규모의 제1연구동 성지관, 2010년엔 연면적 2만6000㎡(약 7860평)의 제2연구동 미지움을 세웠다. 최근엔 상하이上海에 뷰티 사업장을 열어 연구소 규모를 더 늘렸을 뿐만 아니라 지난 4월엔 본사에 프래그런스 랩(Fragrance Labㆍ향료 연구부서)을 오픈했다. 다양한 브랜드 화장품에 들어가는 ‘향’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아모레퍼시픽, 자체 기술력이 힘

물론 에이블씨엔씨가 OEM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한다고 R&D 활동에 소홀했다고 보긴 어렵다. 에이블씨엔씨 관계자는 “미샤와 어퓨 두개 브랜드에서만 매달 수십수백개의 신제품이 출시되고 있다”며 “소비자에게 도움되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현장에선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 생산방식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는 거다.

박종대 연구원은 “예전처럼 번화가에 로드숍을 열기만 하면 매출이 보장되던 시대는 지났다”며 “잘 만든 제품의 인기가 빠르게 확산되는 브랜드의 시대가 됐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정말 잘 만든 제품은 빠르게 인기를 얻고 제품력이 떨어지면 바로 외면받는 시대가 된 거다. 이니스프리와 미샤의 운명이 엇갈린 결정적인 이유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