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쩐錢의 전쟁’, 승자의 저주 부른다

한전 부지 매입전쟁 괜찮나

2014-09-17     박용선 기자

삼성과 현대차의 ‘쩐의 전쟁’이 예상된다. 서울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 땅’ 삼성동 한전 부지 매입을 두고서다. 하지만 두 그룹 간 경쟁이 가열돼 인수금액이 올라가면, 매입 후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 상황에선 투자 리스크가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개발사업보단 각 그룹 주력사업에 투자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꼬집는다.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간 부동산 개발 경쟁이 예고된다. 삼성과 현대차는 서울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라고 불리는 삼성동 ‘한국전력공사(한전) 본사 부지’를 놓고 팽팽하게 맞설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선 두 그룹 중 누가 더 많은 돈을 써 내느냐에 따라 승자가 결정되는 ‘머니게임’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때아닌 부동산 경쟁, “왜?”

삼성동 한전 부지는 규모가 7만9300㎡(약 2만4000평)에 이른다. 축구장 12개 정도에 해당하는 크기다. 한전은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혁신도시특별법에 따라 11월 전라남도 나주 광주전남혁신도시로 본사를 옮겨야 한다. 1년 후인 내년 11월까지는 본사를 매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전은 8월 29일 입찰에 나섰다. 9월 17일 입찰을 마감하고, 18일 최고가를 써 낸 낙찰자를 선정·발표한다. 한전은 이 부지의 감정평가액을 3조3346억원으로 책정했다.

일단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이는 대표적 기업은 삼성과 현대차다. 현대차는 한전 부지에 흩어져 있는 계열사를 수용할 수 있는 그룹 사옥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현대차 양재동 본사는 비좁고, 접근성이 떨어진다. 현대차는 강남 역삼동에 있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등 자동차 관련 계열사를 한곳에 모으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자동차 테마파크를 중심으로 컨벤션센터·호텔·대형쇼핑몰 등을 세워 한전 부지 일대를 세계적인 자동차 중심의 비즈니스 센터로 개발한다는 방안이다. 현대차는 이를 ‘현대차의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조심스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 주요 계열사가 이미 주판알을 튕겼고, 입찰 전략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 역시 현대차와 개발 청사진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차가 자동차를 강조했다면 삼성은 IT를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가 예측한 삼성의 개발 청사진은 이렇다. “삼성은 한전 부지에 인근 서초동 삼성타운에 버금가는 빌딩을 세우고, 삼성전자·삼성SDI·삼성전기 등 전자 계열사들을 입주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IT 전시장과 컨벤션센터도 조성하고, 호텔신라가 개발에 참여해 호텔·쇼핑 사업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그룹간 경쟁으로 인수금액이 가파르게 치솟는다면 ‘매입 후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물론 매각자인 한전 입장에선 인수금액이 올라갈수록 좋다. 업계에선 한전 부지 개발비용을 최소 10조원가량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선 감정가가 언급한 대로 3조3346억원이다. 여기에 서울시가 한전 부지를 제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하는 데 책정한 개발업자의 공공기여(기부채납) 금액이 최소 1조3000억원(땅값의 약 40%)에 달한다. 서울시는 4월 한전 부지를 포함해 코엑스~한전 부지~서울의료원~잠실종합운동장 72만㎡(약 21만7800평) 일대를 국제교류복합지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건축비용도 막대하다. 용적률 800%를 최대한 활용, 총 연면적 99만㎡(약 30만평 규모)의 건물을 3.3㎡당 1000만원의 공사비로 짓는다고 가정하면 건축비만 약 3조원으로 추정된다. 금융비용과 각종 세금, 인지대비용 등을 추가하면 한전 부지 개발에 들어가는 총 비용은 9조6000억원에 달한다. 토지 매각대금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큰 만큼 총 개발 비용은 10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삼성과 현대차라고 하지만 부담스런 금액이다. 삼성과 현대차의 3월 말 현금성 자산을 보면, 각각 66조원과 42조8000억원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재의 상황에서 현금성 자산을 핵심사업과 무관한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하는 게 적절한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부동산’보다는 ‘연구·개발(R&D)’과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과 현대차의 상황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이 애플과 중국 IT업체 사이에 끼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올 2분기 영업이익 7조1930억원에 그쳤다. 2012년 2분기 이후 첫 7조원대 추락이다. 3분기에는 6조원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김영찬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17% 줄어든 5조9720억원으로 예상된다”며 “샤오미·쿨패드 등 중국 스마트폰 업체와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애플 아이폰6 출시로 하이엔드 스마트폰 경쟁도 심화될 전망”이라며 “스마트폰 판매량은 전 분기 대비 7% 증가한 8000만대로 예상되지만 경쟁 심화에 따른 마케팅 비용 증가로 수익성은 악화될 전망”이라고 꼬집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재도 우려스럽다.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에 나서고 있지만 이 부회장은 아직 그룹을 이끌기엔 “부족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전 부지 매입 후 후유증 우려

현대차도 방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는 올 2분기 영업이익 2조87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 감소한 수치다. 원·달러 환율 하락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현대차를 둘러싼 국·내외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현대차는 국내에선 디젤 차량을 무기로 한 수입차에 점점 밀리고 있다. 2012년 10%였던 수입차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약 14%(올 상반기 기준)로 증가했다. 반면 현대차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하이브리드카·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박사는 “폭스바겐·도요타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는 연구개발에 연간 10조원가량을 투자하고 있다”며 “연 투자액이 약 3조원에 불과한 현대차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물론 현대차가 최근 5조원으로 투자액을 늘리겠다고 밝혔지만 그래도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 박사는 아울러 “특히 전기차 등 친환경차와 스마트카 분야의 투자가 미미하다”며 “이런 상황을 보면 사옥을 짓는 것보다는 R&D에 더 집중하는 게 효과적이다”고 설명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