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의 격한 원성, 대형세일에 힘 잃다
홈플러스 경품사기사건 보도 2주 후
2014-08-20 김미선 기자
지난 7월 27일 대형 유통채널이 경품으로 사기행각을 벌인다는 보도가 터졌다. 여기서 지목된 유통채널은 홈플러스. 2011년 이후 진행한 경품행사에서 대부분 당첨자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게 보도의 요지였다. 78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 반지, 고급 외제차 등 고가의 경품을 내걸었지만 홈플러스 측이 정작 당첨자에게 연락을 제대로 취하지 않은 탓이었다. 내부 직원이 경품행사에서 응모 프로그램을 조작해 자신의 친구를 1등 당첨자로 만들고, 경품으로 받은 승용차는 팔아 현금화해 나눠가진 사실도 드러났다.
홈플러스 측은 홈페이지에 부랴부랴 ‘사과의 글’을 올렸다. 당첨자들에게 연락해 경품을 주기도 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스미싱ㆍ스팸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당첨자들과 연락이 제대로 닿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며 “문제가 됐던 ‘다이아몬드 반지’ 경품 당첨자의 경우 경품의 액수만큼 상품권을 지급했고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당첨자에게 경품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경품 조작 사건에 연루된 직원과 친구, 프로그램 조작 직원 등 4명을 경찰에 고소했다”며 “공식 블로그나 트위터 등에도 사과문을 게재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도 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홈플러스는 수차례 경품행사를 진행하면서 응모권에 고객이 기재한 개인정보를 한명당 2000~2800원을 주고 제휴 보험사에 팔아넘겼다. 홈플러스는 1년에 많게는 6번 대규모 경품행사를 전국 매장에서 진행하는데 행사당 평균 40만~60만명이 응모한다.
지난 3년 동안 매년 300만명이 넘는 고객정보를 보험사에 팔아넘긴 셈이다. 홈플러스는 “보험사업은 대형마트서 다양한 편의시설을 제공하듯 고객에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뛰어든 신유통사업일 뿐”이라며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이정희 중앙대(경영학) 교수는 “충분한 설명도 없이 소비자의 개인 정보가 사업적 용도로 사용되는 건 문제”라며 “고객의 신뢰를 얻어 물건을 팔아야 하는 유통기업이 고객의 정보를 팔아 보험회사에 넘겨 수익을 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홈플러스의 이미지는 바닥에 떨어졌다. 누리꾼들은 사건 직후 ‘홈플러스 다시는 안 간다’ ‘소비자를 얼마나 호구로 봤으면’ ‘내 정보가 이런 식으로 팔려나가다니’ ‘사기꾼 집단’ ‘앞으로 홈플러스 불매운동 시작’ 등의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경품 사기사건 보도 이후 홈플러스는 어떻게 됐을까. 온라인 공간에서 홈플러스에 손가락질을 하던 누리꾼들은 ‘불매운동’으로 ‘소비자의 힘’을 보여주고 있을까.
8월 13일 오후 9시30분 홈플러스 등촌점을 찾았다. 늦은 저녁 시간인데도 평상시보다 많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쇼핑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격을 꼼꼼히 체크하는 소비자, 카트를 끌며 지나가는 가족이나 부부 고객들이 눈에 띄었다. 경품사기사건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공교롭게도 홈플러스는 경품사기사건 보도가 나간 지 3일 후인 7월 30일부터 ‘기氣세일’을 진행했다. 총 1만여 품목을 최대 70% 할인하는 행사였다. 생필품 500여 품목의 ‘1+1 행사 및 50% 할인’을 통해 반값에 제공하는 대대적인 할인 행사였다.
8월 13일은 기세일의 마지막 날이었다. 대규모 사기사건의 여파가 대규모 세일로 잊힌 듯했다. 홈플러스 한켠에서 스낵을 파는 상점 주인은 “오히려 판매가 늘었다”며 “홈플러스 전체 매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정문 앞 노점상 주인도 “손님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며 “매출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그렇지만 다들 먹고살기가 힘들어 뉴스 볼 여유마저 없다”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세일에 묻혀 버린 불매운동
그의 말처럼 이곳에 방문한 소비자 대부분은 경품사기사건을 잘 몰랐다. 고객 7팀에게 ‘경품사건을 들어본 적 있냐’고 물어본 결과, 5팀은 “들어본 없다”고 답했다. 장을 보러 온 30대 초반 회사원은 “그런 일이 있었냐”고 되물었다. 가족과 함께 쇼핑 온 40대 남성도 “처음 듣는 얘기”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이와 함께 장을 보러 온 30대 후반의 한 부부 고객은 “방송을 보고 홈플러스에 나쁜 이미지가 생긴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잊힌 것 같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도 과거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01년 스타벅스는 에티오피아의 커피농장에서 1㎏에 300원을 주고 산 원두로 25만원어치 커피를 만들어 판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스타벅스는 국제운동기구와 함께 커피공정거래에 나서고 영세 커피농가를 보호하는 사업을 추진한 끝에 불명예를 씻을 수 있었다.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최근 매일유업은 올 1분기 매출 부문(2916억원)에서 남양유업(2812억원)을 104억원 앞섰다. 매일유업이 남양유업을 따돌린 건 창사 이래 최초다.
매일유업은 1969년, 남양유업은 1964년 설립됐다. 이번 실적을 두고 소비자들의 남양유업 ‘불매운동’ 영향이 컸을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남양유업은 영업사원의 ‘욕설 논란’을 시작으로 대리점주에 ‘밀어내기’ ‘반품 불가’ 등의 ‘갑甲질’이 세상에 밝혀지면서 이미지가 추락했고 이는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가 대대적 불매운동을 벌여 타격이 컸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비윤리적 행위를 한 기업은 행정적 처벌은 물론 사회적 지탄을 받는 게 맞다”며 “소비자의 불매운동은 기업이 스스로 변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소비자, 워치독 역할 해야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를 강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소비자 힘이 특히 크다. 기업의 이미지는 곧 ‘신뢰’고 소비자의 신뢰는 매출로 이어진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신뢰를 잃고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이 기업을 바꾸는 시대다. 소비자는 비윤리적인 기업도 착하게 변화시킨다. 정보 부족의 어려움이나 조직적 움직임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는 ‘시민단체’나 각종 ‘소비자단체’ 각종 온라인 사이트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 이제 소비자들이 ‘워치독’으로 나설 때다. 그래야 소비자를 위한 대형 유통채널이 나온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친 홈플러스 경품사기사건. 대형 유통채널의 기는 또 살았고, 소비자의 격한 원성은 힘을 잃었다.
김미선 더스쿠프 기자 story@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