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유통 9단 김영호의 Money Trend

2012-07-12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

아무리 많은 ‘구제약’을 투입해도 회생하지 못하는 게 있다. 바로 전통시장이다. 최근 지자체가 대형마트·SSM(기업형 수퍼마켓)의 주말휴무제까지 실시했지만 전통시장에는 사람이 몰리지 않는다.

올 해 초, 대형마트와 SSM(기업형 수퍼마켓)에 내려진 의무 휴무제. 전통시장과 중소상인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고육책이다. 하지만 이 제도마저 진행하기에 버거워 보인다. 법원의 판결로 대형마트 의무휴무제도가 당분간 집행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매월 둘째주와 넷째주 일요일에 대형마트와 SSM의 문을 닫도록 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가 위법하다는 판결에 따른 것이다.

서울의 강동구나 송파구는 조례개정이 끝나는 대로 다시 대형마트에 대한 매월 둘째·넷째주 일요일 영업규제가 재개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내는 목소리도 한결같다. 하지만 대형마트에 쇼핑 나온 소비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은 더 이상 먹힐 것 같지 않다.

소비자 감정 흔드는 전략 안 통해

21세기 들어오면서 전 세계는 ‘인터넷’과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세상으로 변했다. 이런 이유로 오프라인에 있는 전통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그야말로 ‘새판 짜기’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내 정부는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비 2조여원을 들여 1500여개 전통시장 중 절반의 시설(아케이드 주차장·진입로·공동창고·교육장·안내센터 등) 2000개를 개선했다. 이처럼 전통시장을 현대식 마트처럼 재단장하고 대형마트의 입점을 규제하거나 상인을 대상으로 마케팅 교육을 실시하는 등 정부는 수없이 많은 처방전을 내놨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좀처럼 회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무너져가는 전통시장의 경제를 살리려면 어떤 정책과 전략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중앙매입’과 ‘지역판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앙 매입본부를 신설하고, 전국 각 시장은 판매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전략이 바로 ‘중앙매입과 지역 판매’ 방식이다. 대형마트와 SSM은 중앙본부에서 매입 관련 업무를 처리한다. 각 지점은 판매기능에 집중한다. 마찬가지로 전국에 있는 1500여개의 전통시장은 판매기능에만 치중하고, 매입기능은 중앙본부에서 맡는다.

이 방식은 새로운 기구를 만들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 중소기업청 소속인 ‘시장경영진흥원’ 조직의 성격을 재정립해 구매자 중심의 조직으로 개편하면 된다. 혹은 지자체 조직 중 지역경제 활성화를 담당하는 부서를 매입 담당 MD부서로 바꾸면 그만이다. ‘중앙매입·지역판매’ 시스템이 정착되면 전통시장에 들어가는 인적·물적 자원을 중앙에서 기획·통제할 수 있다. 양질의 상품과 서비스는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된다.

장점은 또 있다. ‘중앙매입·지역판매’ 시스템이 정착되면 1500여개의 전통시장 지점을 가진 거대한 유통조직이 탄생한다. 이를 통해 공동구입·공동물류·공동상품권·공동인력수급·공동이벤트·공동바겐세일 등의 전략을 수립·집행할 수 있다. 여기에 금융·보험기능까지 추가한다면 전통시장은 ‘지역서비스센터’로 발돋움할 수 있다.

홍보도 강화할 수 있다. 중앙본부에서 온라인 웹진, SNS 홍보, 그리고 오프라인을 통한 뉴스레터 발행을 맡음으로써 일관성 있고 효율성이 높은 광고·홍보 전략을 수립·집행할 수 있다.

이에 따라 1500여개의 전통시장은 지역성과 생활권이 다른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마케팅에 집중할 수 있다. 전통시장 상인 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대폭 줄어들어 매장의 평당 효율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통시장을 살릴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렸으니, 이제 세부적인 전술을 모색해야 한다. 전통시장을 탈바꿈시킬 수 있는 전술을 구체적으로 재정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시장의 영업은 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대형 유통점이 잠든 밤을 활용해 전통시장 쇼핑문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가구의 절반 이상은 1인 또는 2인 가구다. 이들은 밤에 먹고 마시며 사람을 만나고 쇼핑하는 데 익숙하다. 외국의 경우, 영국 런던 북서지역에 있는 해로우 시장은 지역 주민의 시장보기 시간대를 고려해 운영시간을 저녁으로 변경해 고객의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에 적응하고 있다. 홍콩의 대표 전통시장 ‘레이디스 마켓’은 관광객이 넘치는 야(夜)시장이다.

둘째는 SNS의 활용이다. 애플리케이션과 QR코드를 활용해 시장의 갖가지 정보를 제공한다면 적은 예산으로 전통시장의 특·장점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가 2000만명을 돌파했다. 이는 국민 10명 중 4명이 스마트폰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SNS 마케팅은 이제 전통시장이 외면해선 안 될 홍보전술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발맞춰 전통시장 활성화 대책도 바꿔야 한다. 전통시장에 투입되는 상인회 총무를 SNS에 능숙한 젊은 인력으로 교체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통시장의 이벤트, 특가세일상품 안내 등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해야 한다.

전통시장을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셋째는 전통시장을 문화콘텐트의 발신지로 만드는 것이다. 어둡고, 비좁은 곳이라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영화·드라마 촬영소로 거듭나야 한다. 연예인의 이벤트가 펼쳐지는 장이 될 수도 있다. 전통시장의 1년치 주말프로그램을 계획해 홍보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면 그 스케줄에 맞춰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도 생겨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일본의 전략을 배워야 한다. 일본은 무너져 가는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 전략을 쓰고 있다. 이런 전략 아래 상점가를 주민들이 생활하는 공간, 일하는 공간, 즐기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재창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 전통시장을 신명나는 곳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새로운 매입·판매 분리 시스템을 도입하면 전통시장은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전통시장 살리기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통시장에 지금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상상력과 도전정신이다.

☞ 용어설명
SSM(Super Supermarket):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기업형 슈퍼마켓’을 뜻한다. 연면적 990㎡~3300㎡(300평~1000평) 규모로 대형마트에 비해 출점이 용이하다.
QR코드(Quick Response code): 바코드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격자무늬의 2차원 코드.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각종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김영호 | 김앤커머스 대표
- tigerhi@naver.com
- 대한민국 상품평론가 1호
- 중기청 시장경영진흥원 경영자문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