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는 왜 대기업 편에 섰나

표류하는 再제조 토너카트리지 사업

2014-05-30     김건희 기자

재再제조는 환경을 보호하고, 경제적 이익을 창출한다. 기존 재료만으로 중고를 새것으로 만들 수 있어서다. 그중 재제조 토너카트리지는 경쟁력이 무한하다.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프린터 원제조업체가 토너카트리지가 재제조 대상제품 품목고시에 포함되는 걸 반대하고 있다. 문제는 환경부가 기업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거다.

14년째 프린터 토너카트리지를 생산하는 A사. 이 회사가 생산하는 토너카트리지는 일반 토너카트리지와 다른 점이 있다. 사용하고 남은 폐카트리지로 만들었다는 거다. 일명 ‘재再제조 토너카트리지’다. 재활용 토너카트리지와 흡사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재활용이 기존 재료를 가공해 완전히 다른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면 재제조는 기존 제품과 똑같다. 중고를 새것으로 만드는 셈이다.

재제조산업의 가치는 얼마일까. 한국프린터카트리지재제조협회에 따르면 자원회수율은 재활용보다 25% 이상 높고, 이산화탄소 방출절감 효과는 20%나 뛰어나다. 고용창출 효과도 크다. 분해ㆍ세척ㆍ보수ㆍ검사 등 재제조의 작업과정이 노동집약적이어서 다른 산업보다 고용효과가 3배나 크다.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한 것도 특징이다.

A사 대표는 “미국ㆍ독일ㆍ영국ㆍ일본에서는 정부가 적극 나서서 재제조산업을 육성하고 있다”며 “환경과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재제조야말로 창조경제에 부합하는 산업인 셈이다. 재제조는 장점이 많지만 국내에선 걸음마 수준이다. 시장에 출시되는 토너카트리지는 신품ㆍ재제조품ㆍ재생품ㆍ수입사출품으로 나뉜다. 신품은 프린터를 생산하는 프린터 제조업체의 토너카트리지고, 재생품은 토너를 충천한 것이다. 수입사출품은 대부분 중국 모조품 토너카트리지다. 이들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60%, 10%, 15%다. 재제조품은 15%의 점유율을 갖고 있다.

눈여겨볼 점은 재제조품의 경쟁력이다. 재제조품은 신품의 품질과 동급이면서 가격은 신품보다 3배나 저렴하다. 재제조 토너카트리지가 프린터 원제조업체 못지않은 품질력을 자랑한다는 얘기다. 이런 재제조 토너카트리지가 최근 중국산 모조품 토너카트리지의 범람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프린터카트리지재제조협회 관계자의 말이다. “쏟아지는 중국산 모조품 토너카트리지 때문에 재제조 토너카트리지 업계가 도산하기 직전이다.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한 재제조 토너카트리지를 살리기 위해선 품질인증사업이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재제조 대상제품 품목고시에 토너카트리지가 포함돼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4월 환경부와 ‘재제조 대상제품 품목고시’의 확대 여부를 협의했다. 토너카트리지를 비롯한 전기ㆍ전자제품, 산업촉매, 자동차 외장부품 등 50개 품목을 추가하고, 재제조 토너카트리지의 품질인증사업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소비자에게 재제조 토너카트리지의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다.그런데 이런 품질인증사업에 빨간불이 커졌다. 제동을 건 것은 뜻밖에도 환경부다. 올 2월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환경친화적 산업구조로의 전환촉진에 관한 법률(환친법)’에 따라 28개 제재조 대상제품의 고시를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고시대상제품에 포함될 예정이던 토너카트리지가 제외됐다.

창조경제에 부합하는 재제조산업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환친법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가 공동으로 고시하는 법안이기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가 품목 지정을 제안하더라도 환경부가 반대하면 품목 고시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토너카트리지를 품목고시에서 제외한 이유는 뭘까.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프린터 원제조사와 재활용업체 간의 이견이 좁아지지 않는 데다 특허침해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신중하게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캐논은 백산OPC를 상대로 145억원 규모의 특허침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재제조 토너카트리지의 장점은 가격 대비 품질력이 뛰어난 거다. 이런 상황에서 재제조 토너카트리지가 정부로부터 품질인증을 받으면 시장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삼성전자ㆍHPㆍ캐논ㆍ엡손ㆍ신도리코ㆍ교세라ㆍ후지제록스 등 다국적기업이 주축인 사무기기협의회가 ‘재제조 토너카트리지가 포함된 고시’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환경부와 사무기기협의회가 반대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이들은 지적재산권 침해 가능성을 첫째 이유로 꼽는다. 환경부는 재제조업체의 토너카트리지 생산과정이 제조행위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한국프린터카트리지재제조협회 관계자는 강하게 반박했다. “원자재를 가공해 제품을 생산하는 신품과 달리 재제조는 중고품과 폐부품을 원형 그대로 사용하고, 소모품을 교환하거나 수리하는 방식이라서 생산과정과 성격이 다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관계자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소비자가 정품을 구입할 때 지불한 제품 가격에는 특허비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폐카트리지에 대한 특허권을 주장할 수 없다.”

하지만 사무기기협의회는 특허침해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프린터 원제조업체의 기술이 침해될 소지가 있다고 맞받아쳤다. 사무기기협의회 관계자는 “최근 1차 소송에서 국내 백산OPC가 캐논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사무기기협의회가 주장하는 특허침해사례는 사실관계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백산OPC는 재제조업체가 아니다. 토너카트리지에 들어가는 원자재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다. 소송의 내용을 살펴보자. 핵심쟁점은 캐논이 보유한 삼각기어 특허를 배산OPC가 침해했느냐다. 삼각기어는 프린터와 접착했을 때 맞물려 돌아가는데, 토너가 분사하는 것을 돕는다. 백산OPC가 삼각기어를 생산하고 있어 캐논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백산OPC가 캐논의 토너카트리지의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환경부와 사무기기협의회가 내세우는 둘째 이유는 재제조 토너카트리지에서 유해물질이 유출될 수 있다는 거다. 이 역시 사실과 거리가 멀다. 사무기기협의회에서 지목한 토너는 토너파우더를 뜻한다. 이 성분의 원료는 LG화학과 코스모신소재 등에서 생산하는데,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와 전기전자제품 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RoHS)을 통해 안정성을 보장받았다. MSDS는 전세계에서 시판하는 화학물질의 특성을 설명한 설명서고, RoHS는 EU에서 제정한 유해물질 사용 제한 지침이다. 결국 정부 부처와 업계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재제조 토너카트리지 품질인증사업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환경부가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는 거다. 공교롭게도 올해 환경부의 핵심과제는 ‘4R(감량화ㆍ재사용ㆍ재활용ㆍ에너지회수)정책’이다. 핵심업무는 재제조와 밀접하다. 그런 환경부가 재제조 대상제품 품목고시를 반대하고, 품질인증사업에 제동을 걸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는 업계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려 정부가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해명한다. 자칫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부의 이런 발언은 사무기기협의회의 입장과 오버랩된다. 사무기기협의회 관계자는 “현재 업체들이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데 정부가 개입하면 자유무역협정을 위배해 국제적 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처 엇박자가 재제조산업 발목 잡아

환경부의 이런 주장에 환경단체들은 두가지를 꼬집었다. 환경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환경부의 입장은 기업의 논리를 대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욱이 환경부의 핵심사업은 재제조와 연관 있는 사업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제조 토너카트리지를 품목고시에서 제외한 것은 스스로 핵심사업을 부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일로 드러난 것은 두가지다.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간의 밥그릇 싸움이다. 어느 부처에서 재제조산업을 담당할 것인지를 놓고 감정싸움을 벌이느라 업계 목소리는 외면당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의 논리에 휘둘리는 듯한 모양새도 연출됐다. 그 사이 재제조 토너카트리지는 뒷걸음치고 있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