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희로애락의 ‘메타포’

스르르-무릉도원에 놀다

2014-05-13     손구혜 문화전문 기자

청색과 홍색의 조화로움으로 전통 산수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 왕열이 전시회를 갖는다. 왕열의 작품은 옛 선비들의 시조 한수가 절로 생각나게 한다. 그의 작품은 정치·경제·복잡한 이념의 갈등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힐링을 선사한다. 그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괜스레 편안해진다.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현재의 삶과 다른 세상, 유토피아를 꿈꿔왔다. 시대마다 삶의 기준은 모두 다르지만 모두가 꿈꾸는 또 다른 세상이 유토피아다.

그런데 유토피아의 핵심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유토피아의 어원만 봐도 알 수 있다. 유토피아는 그리스어로 ‘ou(없는) topus(장소)’를 합성한 단어다. 도연명은 이상향으로 도원경을 그리며 인간이 찾을 수 없는 곳이 무릉도원이라고 했다. 존재하지 않지만 현대인의 마음의 안식처라는 거다. 유토피아도 마찬가지다. 존재하지만 사람들이 꿈꾸는, 그렇지만 없는 곳이다. 오래 전부터 많은 작가들이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구현해 냈다.

이들이 그리는 유토피아는 항상 못마땅한 현실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었다. 배고픔이 지배하던 시절의 유토피아는 먹을 것이 지천이었다. 기계문명에 염증을 느낀 이가 그린 유토피아는 자연의 섭리가 세상을 지배했다. 그러나 이들이 구현하는 유토피아는 순전히 허구에 불과하다. 유토피아라는 앞서 말했든 존재하지 않는 없는 곳이라서다. 굳이 유토피아를 꾸며내 의지해야만 하는 걸까. 진정한 유토피아, 다시 말해 없는 곳에서 지금의 삶을 돌아보고 즐거움을 누릴 수는 없을까.

상상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진정한 즐거움이다. 작품에 마음을 담으려면 실제 형상보다 화가의 의지가 더 중요하다. 왕열은 그런 면에서 풍부한 상상력을 지녔다. 그는 희망을 그린다. 전통적인 옛 산수화의 구성요소를 비슷하게 가져가면서도 그만의 재해석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왕열의 ‘스르르-무릉도원에 놀다’의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와 자연을 통해 도시 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고독과 동행, 그리고 행복 등 다양한 희로애락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새는 사람을 상징화해 의인화한 것이고 배경이 되는 자연은 도시풍경이다. 새는 외롭게 혼자 있기도 하고 여러 마리가 날아다니기도 한다. 이는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함축해 보여준다. 새와 말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실존적인 모습이자 자유로운 여행과 조용한 침묵 속 휴식과 명상을 즐기며 이상세계로 나아가려는 의지의 반영이다. 작가는 자연과 산수를 묘사하면서 형태나 조형성에 앞서 정신과 사유를 우선시한다.

아득히 멀리서 보이는 무릉도원의 자연과 이를 관조하는 자아, 그리고 관람객의 관계적 설정은 옛 문인들이 그리던 산수화의 전형적인 심상이다. 이는 인간의 삶이 내재하는 곤궁과 실존적 고통들을 직시하는 한편 이를 낙관적 자세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자 했다. 왕열의 작품은 5월 6일부터 5월 11일까지 충무아트홀에서 만날 수 있다.
손구혜 문화전문기자 guhson@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