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바보 기꺼이 살인자 되다
크랭크 인 | 방황하는 칼날
2014-04-24 손구혜 문화전문기자
아내를 암으로 떠나보내고 딸 하나만 바라보며 사는 이상현(정재영)은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도 딸 수진이(이수빈)를 위해서는 못할 게 없는 아버지다. 하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딸은 아빠에게 퉁명스럽게 대한다. 어느 날 딸이 들어오지 않자 걱정하던 그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나간 자리에서 싸늘한 주검이 된 딸을 본다. 딸이 강간 살해를 당했다는 엄청난 사실까지 듣는다.
모든 걸 잃은 듯 망연자실해 경찰서 앞마당 의자에 앉아 있는 게 일과가 돼버린 이상현에게 익명으로 날아온 한 통의 메시지. 혹시나 싶어 메시지 속 주소로 향한 그는 딸이 강간 당하는 동영상을 보고 있는 철용을 우발적으로 살해한 공범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이상현은 그들을 찾아 떠난다. 피해자에서 살인자로 변한 이상현, 그를 잡으려고 쫓아가는 형사 장억관(이성민)은 착잡한 심정과 연민에 휩싸인다. 그리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고뇌하는데….
‘방황하는 칼날’은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1985년 「방과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이다.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며 폭넓은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회의 정곡을 찌르는 문제 제기로 정평이 나있다. 1999년 「비밀」로 제5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그는 2006년엔 「용의자 X의 헌신」으로 134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은 그의 작품은 일본 내에서 27편의 드라마와 11편의 영화로 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도 ‘백야행’과 ‘용의자X’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청소년 범죄에 문제제기
이정호 감독은 ‘방황하는 칼날’을 통해 사회의 보편적 모순을 보여주면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청소년 형벌제도와 일반인 형벌제도에 의문을 던진다. 원작소설을 접하고 아버지의 비극적 이야기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는 이 감독은 7년간의 준비 끝에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곪아버린 청소년 범죄에 대한 원작의 날카로운 시선을 알리고 있다. 아울러 자식을 떠나보낸 아버지의 슬픔과 살인자가 된 아버지를 쫓으며 직업윤리와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는 형사를 통해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누구나 경험해 봤을 법한 인간의 내적 갈등을 스크린에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 생각해 볼 만하다.
손구혜 문화전문기자 guhson@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