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처럼…’ 레슨은 무의미
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우즈가 전승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정신이 흔들린 탓이다. 처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설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골퍼로서 최고의 경지다. 그런데 이게 될까. 그래도 노력은 해야 한다. 골퍼라면 목표와 실천 자세를 가지고 꾸준히 정진하는 공자의 방식이 어울릴 것 같다.
“(핸디캡이) 어느 정도이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모든 주말골퍼들은 자신의 핸디캡보다 낮게 답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80대 중ㆍ후반의 스코어이면 “보기플레이입니다”고 겸손해한다. 또는 “90대입니다”고 말한다. 무조건 져 줘야하는 극단적인 접대골프가 아닌 이상 보기 플레이어가 필드에 나설 때 “오늘은 혹시 70대를 기록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는다. 그렇지 않는 골퍼는 없을 것이다. 레슨도 마찬가지다. ‘이러이러하면 최고의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다’는 레슨은 의미가 없다. 그런 걸 레슨이라면 “타이거 우즈와 똑같이 하라”는 것 이상의 확실한 레슨은 없다.
승부 가르는 ‘순간의 샷’
이론상으로 80세 아마추어 노인이 손과 발에서 땀이 나면 똑같은 코스에서 타이거 우즈를 이길 수도 있는 게 골프다. 이런 맥락에서 우즈가 전승을 하지 못하는 것은 정신이 흔들린 탓이다. 화이트 칼라 골퍼들의 승부는 언제나 특정한 홀, 한순간의 샷에서 판가름 난다. 이 고비에서 1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 섰을 때의 마음가짐으로 돌아설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골퍼로서 최고의 경지다. 그런데 이게 될까. 칭기즈칸 어록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나를 극복하면 ‘칸’이 된다? 얼마나 쉬운가. 그러면 세계도 정복할 수 있다고 한다. 후세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 알려졌다면 아마도 원 제국 모든 국민들의 좌우명이 되었을 것이다.
세계 인류사상 학문에 가장 정통한 인물로 추앙받는 이는 공자다. 그의 말 중에 ‘나이 70에 욕심에 따라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논어위정편 4장)는 내용이 있다. 70살이 되어서야 자신을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가 있었다는 얘기다. 신라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물’ 에피소드 역시 모든 판단의 주체와 이유는 내 안에 있음을 가리킨다. 위 세 명의 위인이 성취한 마인드컨트롤은 각각 성질이 다르다.
칭기즈칸은 배고프면 쥐를 잡아먹고, 뺨에 화살을 맞고도 무서운 의지로 생존한 끝에 진리를 터득했다. 공자는 모든 학문을 집대성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오르다보니 마인드컨트롤을 할 능력이 있음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원효대사는 정신수양 도중 석가모니처럼 한 순간에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비교하자면 칭기즈칸은 순전히 야생적 경험에서, 원효대사는 그와 정반대, 공자는 중간쯤 되는 것 같다. 이들의 위인전은 초등학생용으로도 출간돼 있다. 옛것을 익히며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실천을 못하는 게 인간이다.
공자처럼 실천하라
필자는 예나 지금이나 라운드가 끝나면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나를 컨트롤 못했다는 미완성된 자신을 또다시 확인한다. 어느 위대한 골퍼가 “미스 샷은 빨리 잊어버려라”는 명언을 남겼다거나, “초심, 평상심을 찾아라”는 레슨은 그래서 부질없다. 보통 인간으로선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왕에 골프를 잘 치겠다면 노력은 해야 한다. 굳이 거론한다면 칭기즈칸식으로 얻어지는 마인드컨트롤은 고생고생하며 간간히 운도 따르고 뒤늦게 얻어지는 매우 미련한 방식이다. 원효대사처럼 단단히 무장된 정신집중 단계는 이 시대 현실로는 상상키 어려운 희망사항일 뿐이다. 골퍼라면 목표와 실천 자세를 가지고 꾸준히 정진하는 공자의 방식이 어울릴 것 같다. 세상 일도 그런 것 같다.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