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한 스윙연습, 화를 자초

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2014-04-11     이병진 고문

한때 하루 400개씩 공을 때려내곤 했던 기억으로 느닷없이 1년 만에 400개 공을 때리는 연습을 한다. 업무에 찌든 화이트 칼라에게는 미련한 짓이다. 육체적인 맹연습보다는 ‘생각하는 골프’로 대비하는 게 유리하다.

대부분의 동창들이 그렇듯 필자의 고교(휘문) 동창 골프모임도 어느덧 30년째다. 개중에는 국내 최고 명문이라는 골프장 클럽챔피언 출신도 있다. 그럼에도 5년 전부터 혜성처럼 등장한 2명의 신예(?)가 메달을 나눠 갖기 시작했다. 둘 모두 사업하는 친구들이다. 최근 어느 교수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이란 칼럼 가운데 ‘고교 때는 존재조차 미미했던 친구가 나이 60이 다 돼 훌륭하게 성공해 의아하고 놀라웠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교수는 ‘일찍 성공할수록 인생의 패배 확률이 높아진다. 가능한 차근차근 밟는 게 인생성공의 비결’이라고 주장했다. 우리의 ‘신예’는 그 교수의 말처럼 50대 중반에서야 사업이 번창하기 시작했고, 골프 실력도 그제야 발휘됐다.

그런 ‘신예’가 지난달 시즌 오픈전에 불참했다. 한 명은 출전 며칠 전 어깨의 인대가 늘어났고, 한 명은 아예 어깨 인대 파열로 수술을 받아 올 상반기 시즌은 필드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됐다. 시즌을 앞두고 맹훈련을 하다 사단이 난 것이다. 이 중 한 친구의 출근 시간은 아침 7시. 최근 국내 전체에 몰아친 기업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머리와 육체를 쥐어짜는 강행군의 나날을 보내면서도 새벽에는 스윙연습을 거르지 않았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 접대 술 등으로 체력과 근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청년 시절의 기개로 운동을 강행하다 인대가 늘어난 것이다.

인대는 조금씩 손상되기도 하지만, 단 한 번의 스윙으로 손상이 오는 경우도 흔하다. 아무리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라도 나이가 들수록 근육의 수축 허용치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게 인간이다. 더군다나 회사의 오너로 부정기적으로 연습하면서 기껏해야 주말이나 필드에 나갈 정도의 운동량 정도만 허용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육체를 군대시절의 능력에 접목한 것은 사단이 안나는 게 이상할 정도다.

이런 참에 “혹시 만우절 거짓말”로 생각할 정도로 지인으로부터 믿을 수 없는 SNS가 필자에게 날아왔다. ‘난 운동을 참 열심히 하는 것 같다. 매일 아침저녁 150번씩 퍼팅연습, 아침엔 1시간 35분(5분 단위도 정확) 동안 400개의 공을 때리고 오후엔 2시간 미식축구 패스워크로 유연성 및 스피드 훈련, 주 2회 2시간 이상 야외 사이클, 주말인 토ㆍ일요일은 3시간 이상 코스 산행을 지난 7개월 동안 단 하루만 걸렀다.’

거짓말이랄까 봐 실명을 밝힌다. 50대 후반으로 20여년간 골프 관련 사업을 하는 송영호 사장이다. 5년 전 당뇨를 고치려고 시작한 게 그렇게 됐단다. 어깨 인대가 늘어난 친구를 송 사장과 비교하면 불공평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송 사장은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자신의 몸에 맞는 수준의 운동량을 조금씩 늘려 체계적으로 반복했고, 한 쪽은 시간을 무리하게 압축해 단숨에 폭발시키려다 탈이 난 게 다른 점이다. 한 때 하루 400개씩 공을 때려내곤 했던 기억으로 느닷없이 1년 만에 400개 공을 때리는 것은 특히 업무에 찌든 화이트 칼라에게는 미련한 짓이다.

골프 애호가들이 기다리던 시즌이 오픈됐다. 화이트 칼라 골퍼 역시 시즌을 대비해 훈련을 얼마만큼 했든 두 가지 케이스의 정황은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요즘은 연중 부상이 발생하는 위험한 시기 중의 하나다. 라운드 1주일 전, 또는 결전을 앞둔 전날 평소대로가 아니라 느닷없이 연습장에서 공을 200~400개를 때리는 것은 위험하다. 천만다행으로 인대가 늘어나지 않을지는 몰라도 결전에선 이미 체력이 소진된 상태가 되어 라운드를 망칠 수가 있다. 업무가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라운드가 내일, 또는 모레에 있다면 육체적인 맹연습보다는 ‘생각하는 골프’로 대비하는 게 적어도 육체의 불상사도 막고 스코어에도 유리하다.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