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착시효과’, 大盜를 키웠다

이통사가 보조금에 목매는 까닭

2014-04-03     김건희 기자

휴대전화 신제품이 출시되기 직전이면 보조금이 쏟아진다. 이동통신사 시장점유율이 변동할 때도 보조금은 살포된다. 이런 식으로 한해 동안 이동통신 3사가 지출한 보조금은 대략 6800억원이 넘는다. 정부가 불법 보조금 행태를 근절하겠다며 과징금과 영업정지 처벌을 내리는데도 왜 자꾸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보조금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는 드물다. 소비자는 휴대전화 단말기를 구입할 때 보조금을 더 많이 지급하는 이동통신사로 이동하게 마련이다. 85만원짜리 휴대전화 단말기를 구입할 때 보조금을 받으면 10만원에 살 수 있어서다. 외국인이 이 광경을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이 모든 게 현실이다.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지급은 심각한 수준이다. 광고비를 제외한 이동통신 3사의 마케팅 비용을 살펴보자. 증권사와 이동통신 3사의 IR 자료를 종합하면 2005년 2812억원에 달했던 마케팅 비용은 2012년 6839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7년 사이에 143% 넘게 급증한 것이다. 이동통신사 마케팅 비용의 핵심이 단말기 보조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하는 격이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이동통신사가 보조금 경쟁을 지속하자 비난여론이 쏟아진다. 이동통신사로선 돈은 돈대로 쓰고 욕은 욕대로 먹는 셈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동통신사에서 근무하거나 한때 몸담았던 이들에게 이동통신사의 보조금이 반복되는 이유를 물었다. 이들은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지급은 휴대전화 유통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휴대전화 유통은 제조사가 아니라 이동통신사가 이끈다. 이동통신 3사가 휴대전화 유통 채널을 철저하게 장악하고 있어서다. 이동통신사는 휴대전화 제조사로부터 휴대전화 단말기를 대량으로 구입해 직영점과 대리점에 유통한다. 대리점은 다시 판매점(이동통신 3사의 휴대전화를 동시에 파는 2차 매장)에 넘긴다. 휴대전화 제조사가 이동통신사의 유통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여기엔 제조사 나름의 사정이 있다. 제조사는 이동통신사가 대량으로 단말기를 구입하면 재고부담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반대로 이동통신사가 대량으로 단말기를 구입하지 않으면 재고관리뿐만 아니라 유통망까지 확보해야 한다. 제조사가 유통점을 일일이 계약하고, 재고를 관리하면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통점을 관리해본 경험이 없는 제조사로서는 부담이다.

제조사가 매장을 확보해 유통망을 형성한다고 해도 문제다. 이동통신사가 장악한 유통시장 주도권을 뺏어오는 데 한계가 있어서다. 이동통신사는 지난 15년 동안 휴대전화 유통시장을 장악해왔다. 노하우와 시스템을 갖춘 노련한 사업자인 셈이다. 더욱이 제조사가 유통채널을 확보하려고 시도하는 순간 이동통신사와의 관계는 공조체제에서 경쟁체제로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휴대전화 유통시장을 장악한 이동통신사는 줄곧 보조금 경쟁만 해왔을까. 그건 아니다. 한때지만 이동통신사가 서비스로 경쟁하던 때가 있었다. 2007년 3월 KTF(당시)는 3세대(3G) 영상통화 브랜드 ‘쇼(SHOW)’를 론칭했다. 어마어마한 마케팅 비용을 쏟으며 영상통화 특화서비스를 내세웠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비싼 통화요금과 이어폰이 없으면 사용이 제한되는 점 때문에 핵심 3G 서비스로 자리잡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3G 시장의 무게 중심이 영상서비스에서 모바일 무선인터넷으로 옮겨가면서 영상통화는 3G가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로 전락했다”며 “가입자의 반응이 미지근 하자 결국 KTF는 3G 서비스 방향을 무선데이터 서비스로 수정했다”고 말했다. 이동통신사가 다시 보조금 경쟁으로 돌아선 이유다.

휴대전화 유통구조 바로 세워야

주목할 점은 그 이후 이동통신사 간 보조금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는 것이다. 최근 ‘보조금 대란’은 과다한 보조금 경쟁에서 기인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보조금 대란은 신제품 출시 전, 이동통신사 시장점유율이 변동할 때, 영업정지 직전에 일어난다. 흥미롭게도 최근 몇년간 이동통신시장이 이런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피처폰 중심이던 단말기가 고가의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신제품이 쏟아졌다. 변수는 또 있었다. 통신시장이 2012년 4세대(4G) LTE로 넘어오면서 3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가 LTE 서비스를 공격적으로 개시하자 이동통신사의 시장점유율에 변화가 생겼다.

이후 SK텔레콤과 KT의 반격이 시작됐고,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과다경쟁으로 통신시장이 혼탁해졌다. 정부는 이동통신사에 대해 과징금과 영업정치 처벌을 내렸다. 하지만 보조금 과다경쟁은 사라자지 않았다. 오히려 ‘버스폰(버스요금만큼 저렴해 누구나 구매할 수 있는 폰)’이 등장했다. 보조금 경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지급 행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과거에는 이동통신사가 매출의 일부분을 보조금으로 지출했다. 그래서 이동통신사별 생산능력(CAPA)에 걸맞은 판매가 가능했다. 지금은 단말기할부채권유동화(ABS)를 통해 CAPA와 상관없이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렇게 되면 이동통신사의 재무상황은 압박을 받게 된다. 고가의 요금제와 단말기 가격은 고객의 요금제에서 충당할 수밖에 없다.”

ABS는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발행한 증권이다. 이동통신사는 고객의 단말기 요금을 한꺼번에 내주고 단말기 요금과 이자를 매월 통신비에 합쳐 고객에게 청구한다. 그러면 고객은 단말기할부요금을 이동통신사에 상환한다. 이동통신사의 ABS는 고객에게 단말기할부요금을 요구하는 채권인 셈이다. 또 다른 통신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동통신사가 ABS를 통해 보조금을 지급할 정도로 통신시장의 성장이 정체됐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동통신사는 시장점유율을 달성하기 위해 보조금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결국 가입자를 뺏고 뺏기는 승자 없는 싸움이 벌어진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가입자의 요금으로 충당된다. 가입자가 보조금을 지원받는 대가로 비싼 요금제에 가입하는 것이다.” 과도한 보조금 경쟁이 가입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보자. 고객 A씨가 기존에 가입한 이동통신 월 요금제는 5만4000원이다. 최근 85만원 스마트폰을 구입하면서 보조금을 지원받는 대가로 6만9000원 요금제에 가입했다. 약정기간을 2년이라고 가정하면 전체 통신요금은 165만6000원이다. A씨로선 5만4000원 요금제를 유지했을 때보다 36만원을 더 지급하기 때문에 손해다. 물론 36만원의 신제품을 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가입자는 단말기를 줄곧 사용하는 특성이 있다. 소비자의 이런 경향은 이동통신사에 이득이다. 계속해서 가입자를 고가의 통신요금에 묶어두고, 이를 통해 과도한 보조금으로 늘어난 비용을 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보조금 경쟁으로 늘어난 비용이 통신비 인상을 부추기는 셈이다.

기형적 휴대전화 유통구조 개선해야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보조금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유통망을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금처럼 단말기 유통과 이동통신 서비스를 결합해 판매하는 형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태희 국민대(경영학) 교수는 “휴대전화 단말기와 이동통신 서비스를 분리해서 판매하면 소비자는 자신에게 적합한 요금제를 선택함으로써 합리적인 통신소비가 가능해진다”며 “보조금 대가로 고가의 요금제나 부가서비스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관행도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동통신사의 통신요금 인하를 요구하려면 휴대전화 유통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진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동통신사에 요금인하를 요구하기 앞서 단말기 출고가를 낮추고 제조사와 이동통신사의 영업형태를 개선해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서 요금인하를 유도하는 것이 보조금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고 말했다. 기형적인 휴대전화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일침이다.
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