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쌈짓돈으로 주주행세 괜찮나

[Part1]국민연금 두번째 ‘눈’ | 의결권 논란

2014-03-21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국민연금의 주주 의결권을 두고 말이 많다. 기본적으로 의결권 행사의 기본방향은 안정된 경영권을 바탕으로 장기적 안목에서 경영을 할 수 있도록 설정돼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국민연금 주주 의결권 강화논의를 보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정말 중요한 건 가입자와 회사의 이익을 위해 행사해야 한다는 명확한 법적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주주의결권 행사를 두고 논란이 많다. 투자한 회사의 주주에 해당하는 국민연금이 주주의 권리인 의결권을 행사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개인투자자들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자신의 돈을 스스로의 판단으로 특정회사에 투자하고 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한다. 반면 국민연금은 국민이 납부한 보험료를 바탕으로 주주 의결권을 행사한다. 투자자금의 성격과 의결권 행사주체의 성격이 개인투자자와 완전히 다르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에는 본인의 책임으로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시장)에 의한 규율이 작동하지 않다 보니 보험료를 납부한 ‘가입자’와 그 자금이 투자된 ‘회사’의 이익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국민연금 주주 의결권이 남용될 위험이 크다. 의결권 행사의 남용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의결권 행사원칙을 확실하게 세워야 한다. 국민연금 주주 의결권 행사주체에게 ‘가입자’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법적 의무와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연금 관련법에는 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그렇다보니 국민연금 주주 의결권이 가입자와 회사의 이익을 위해 행사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일례로 2012년에 상법상 ‘이사책임감면제도(제400조)’를 개별 회사들이 정관변경을 통해 도입하려는 안건에 국민연금이 반대해 몇몇 회사들이 도입을 포기했었다. 이사책임감면제도는 경영진이 사소한 실수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을 때 책임 한도를 제한해 주는 것이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투자와 경영판단에는 실패의 위험성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작은 실수로 실패한 경영진에게 무한책임을 지게 하면 투자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때문에 이사책임감면제도를 도입하면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작은 실수에서 기인한 책임이 일정 부분 감면돼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미국이나 선진국 중 많은 곳에서 이 제도를 도입한 이유다.

우리나라 역시 2012년 상법개정을 통해 도입했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주주가치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주가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일관된 실증연구도 없는 데 말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연금 주주 의결권 ‘행사지침’은 경영권을 방어하거나 안정화할 수 있는 제도는 원칙적으로 반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민연금 주주 의결권 행사의 기본방향이 경영권을 제한하고 규제하는 쪽으로 설정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단기주가와 배당에만 관심을 갖는 투기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의결권 행사의 기본방향은 회사가 안정된 경영권을 바탕으로 장기적 안목에서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쪽으로 설정돼야 한다. 그래야만 기금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수익제고를 꾀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주식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함에 따라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정당성과 방향을 두고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가는 법이다. ‘가입자’와 ‘회사’의 이익을 위해 국민연금 주주 의결권이 행사돼야 한다는 명확한 법적규정부터 마련해야 한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sshun@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