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정체성이 구름에 갇혔다

이주열 한은 총재 내정자 매파냐 비둘기파냐

2014-03-10     김정덕 기자

이주열 전 한국은행 부총재가 총재에 내정됐다. 그의 내정에 불만을 품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35년간 한은에 몸담았고, 나름의 강단도 있고, 말과 행동은 신중하며, 낙하산 인사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부 평판도 좋다. 하지만 그의 성향과 콘셉트를 둘러싸곤 우려감이 나온다. 특임교수 재직 시절 한 언론서에 쓴 칼럼 내용이 지나치게 ‘친정부적’이라서다.

1987년부터 18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 의장을 네번이나 역임하면서 ‘경제 마에스트로’라는 찬사를 받았던 앨런 그린스펀. 하지만 그의 명성은 퇴임 후 곤두박질쳤다. 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의 원흉으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다.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이 거품을 양산했고, 그 결과 금융위기가 터졌다는 게 손가락질의 이유였다. 세계경제는 지금도 바닥을 헤매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통화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물가안정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돈줄을 죄면 경기가 위축될 수 있다. 경제성장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낮추고 시중에 돈을 풀면 물가가 상승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이라는 외줄에서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사이를 오가며 기준금리와 통화량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이성태 전 한은 총재가 “한은 총재가 풀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경제안정을 통한 경제발전 도모’”라며 “경제안정을 통해 국가가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중수 총재의 뒤를 이을 이주열 총재 내정자를 주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주열 내정자가 균형감 있는 통화정책을 펼칠지 궁금해서다.

이 내정자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이다. 능력과 자질을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한은의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해 업무에 누구보다 밝고, 판단력과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식견을 갖췄다”며 “합리적이고 겸손해 조직 내 신망도 두텁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이 내정자는 1977년 한은에 입행한 후 35년간 해외조사실장,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부총재보, 부총재 등 여러 보직을 역임한 ‘정통 한은맨’ ‘자타공인 통화정책 전문가’다.

낙하산 인사를 우려했던 것과 달리 한은 출신 인사가 임명됐다는 점 때문에 한은 내부에서도 반기는 분위기다. 한은 관계자는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말할 수 없다”면서도 “아무래도 외부인사가 오는 것보다는 한은의 조직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오는 게 더 반갑지 않겠는가”라고 속뜻을 내비쳤다.

일부에선 이 내정자가 “60년에 걸친 고유의 가치와 규범이 하루아침에 부정되면서 혼돈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퇴임사(2012년)를 통해 김중수 총재의 소통방식을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을 예로 들며 “평소 입이 무겁지만 할 말은 하는 성격”이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그가 ‘맏형 리더십’을 갖고 있다는 평가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물론 이 내정자가 인사청문회를 무사통과할 수 있을진 아직 알 수 없다. 이번에 처음 실시하는 한은 총재 청문회에서 이 내정자의 숨은 논란거리가 부각될 수도 있다. 다만 지금까지 청문회에 불려간 인사들에 비하면 크게 흠잡을 만한 부분은 없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자질은 호평, 콘셉트는 모호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그의 통화정책 콘셉트가 뭐냐는 거다. 일부에선 그를 ‘매파(고금리와 긴축통화로 안정을 꾀하는 부류)’로 분류한다. 2012년 부총재 퇴임 당시 “물가안정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외부의 냉엄한 평가에 금통위의 일원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던 말이 근거다. 또 다른 일부에선 정체성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한은 부총재 시절 단 한번도 소수의견을 내지 않았다는 게 근거다. 신세돈 숙명여대(경제학) 교수는 “통화정책의 기둥으로서 한은에서 어떤 역할을 해온 인사인지 의문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한성대(무역학) 교수는 “한은 내부 출신 총재가 현재의 경제 환경과 막중한 책임에 비춰 무게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언뜻 모호해 보이는 이 내정자의 통화정책은 그가 연세대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12월 문화일보에 쓴 칼럼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규제의 획기적 완화,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제고 등 경제활성화를 위한 정책제안이 봇물을 이룬 지 오래다. 정부에 대한 신뢰와 기업가 정신 존중,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정부의 기업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활성화 대책이 필요하고, 노조가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또 “어려울 때일수록 정부를 신뢰하고 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과거 개발연대에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앞날의 비전을 제시하고 한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돛의 역할을 했다”고 박정희 정부 시절의 경제성장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현 정부가 개발연대 정부와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친정부적인 발언이라 봐도 무방해 보인다. 이 내정자가 총재가 될 경우 한은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는 칼럼을 이렇게 맺었다. “성장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기업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끊임없는 혁신과 철저한 이윤 동기에 바탕을 둔 창조적 기업가 정신이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기본원리가 가끔 간과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분배 없는 성장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만 성장 없는 분배는 불가능하다. 패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려다 승자까지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관점에서 규제 정책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더 해석할 필요도 없이 성장 일변도를 외치고 있다. 실제로 그는 3월 3일 기자회견에서 “매파 총재라는 평이 있는데 어떻게 정책 공조를 할 것이냐”는 질문에 “부총재일 때는 부총재가 당연직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기 때문에 한은의 입장을 대변했던 것”이라고 답하며 간접적으로 ‘매파’가 아님을 표현했다.

친정부적 성향, 할말은 하는 성격

박근혜 정부는 대선 당시 복지국가를 표방하며 등장했지만 현 정부의 정책에는 제대로 된 복지가 없다는 평가가 줄을 잇는다. 오히려 취임 1년도 채 되지 않아 완전히 경제활성화 정책으로 돌아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내정자가 정부와 마찬가지로 경제성장에 한은의 정책방향을 맞춘다면 문제는 심각해질 수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콘셉트는 또 후퇴하고, 거품만 양산될 수 있어서다. 이 내정자가 친정부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어찌 됐든 한은의 수장은 교체가 임박했고, ‘이주열식 통화정책’은 곧 성향을 드러낼 거다.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이라는 갈림길 사이에서 그는 어느 쪽으로 발을 뗄까. 답은 곧 나온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