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판결 대놓고 왜곡했나

고용노동부 노사지도 지침 논란

2014-03-07     김정덕 기자

노사간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2차전이 벌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내놓으면서다. 노동부는 법률검토를 거쳐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노사지도 지침이 대법원 판결을 확대해석하고 있다”며 우려의 시각을 보내고 있다. 노사갈등의 불씨가 더 커질지 모른다는 거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A씨는 설 명절을 앞둔 어느 날 황당한 일을 겪었다. 회사 측이 연 400%씩 지급하던 정기상여금 제도를 아예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이런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노동부가 1월 23일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내놓으면서다. 노동부는 “통상임금을 둘러싼 노사갈등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노사간 대립에 기름을 부었다”는 비판이 더 크다. 특히 민주노총은 2월 27일 노조가 없는 사업장을 위한 ‘통상임금 대응지침’을 내놨다. 노동부의 지침을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한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계가 문제를 삼는 대목은 대법원 판결에 대한 노동부의 ‘확대 해석’이다. 노동부 임금근로시간개혁추진팀 관계자는 “학계와 법조계의 전문가 자문을 얻어서 만들었다”며 “하자가 없기 때문에 변경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과연 그럴까. 노동부 지침과 대법원 판결문을 한번 비교해보자. 대법원 판결의 주요 쟁점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가’와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임금이 있다면 추가적인 임금 청구를 소급 적용할 수 있는가’였다. 이번에 나온 노동부 지침의 쟁점 역시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노동부 지침에는 “정기상여금(이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더라도 ‘지급일 당시 재직 중인 직원’에게만 지급하고 있다면 고정성(사전에 지급하기로 확정된 것)에 위배돼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2월 29일 퇴직하는 B씨가 3월 5일 상여금을 받기로 했다고 치자. 회사는 노사간 임단협을 통해 ‘퇴직자에게는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 임단협에 따르면 B씨의 상여금은 ‘사전에 지급하기로 확정된 돈’이 아니므로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 당연히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추가 근로수당(연장ㆍ야근ㆍ휴일근로 등)도 적어진다. 노동계 전체로 보면 추가 청구해야 할 수 있는 통상임금이 적어진다. 이 부분은 대법원 판결문 내용도 비슷하게 나온다.

문제는 대법원이 이미 퇴직 여부를 떠나 상여금을 회사가 당연히 줘야 할 돈으로 판시했다는 거다. 신인수 민주노총법률원장은 “1981년 대법원은 지급기간 만료 전 퇴직한 노동자도 상여금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고 설명했다. 상여금을 못 받고 퇴직했다면 회사가 일수를 계산해 지급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급하지 않으면 임금체불이다. 이런 맥락에서 B씨의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들어간다. 그런데도 노동부가 한 차례 논의도 없이 자의적으로 이를 통상임금에서 배제한 거다.

이뿐만 아니라 노동부는 지침은 “통상임금에 속하는 임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근로기준법에 위반돼 무효더라도 신의칙 요건을 갖춘 경우엔 추가임금 청구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법에서 정한 통상임금도 노사합의문에서 아니라고 하면 아니고, 신의칙만 갖추면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는 분위기가 풍긴다. 하지만 판결문엔 “노사합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다고 해서 노사합의의 무효 주장에 대해 예외 없이 신의칙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며 “특별한 사정이 있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그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돼 적용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천천히 살펴보자. ‘신의칙 요건을 갖추면 추가임금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특별한 경우, 신의칙을 예외적으로 따른다’는 게 대법원의 취지다. 두 문장은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판결문이 “(신의칙의 적용은) 법체계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해 법의 권위와 법적 안정성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신의칙의 적용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부당한 결과가 야기되는 경우의 최후 수단”이라는 소수의견을 밝힌 것은 이 때문이다. 대법원은 신의칙의 최소 사용을 규정하고 있는데, 노동부는 그 범위를 더 넓힌 셈이다.

노동부는 “대법원 판결(2013년 12월 18일) 이후 노사가 새로이 합의한 때부터 신의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추가임금 청구의 기한을 제한했다. 하지만 이런 문구는 판결문에 없다. 노동부 덕에 사측이 의도적으로 노사합의를 미루거나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경우, 대법원 판결이 언제 적용될지 알 수 없다. 이전의 신의칙에 따라 통상임금이 있어도 추가임금을 청구할 수 없어서다. 그러다 퇴직하면 그마저 받을 기회가 사라진다. 노동부의 지침은 대법원 판결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함이다. 추후 개정될 근로기준법의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 그만큼 중요하다. 노동부가 법률 전문가의 자문만 구할 게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의 의견도 함께 듣고 지침을 냈어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