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인 굿’ 과하면 사기다

조준행의 재밌는 법률테크

2014-02-20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건설업체 A사장. 그는 공사를 수주할 때마다 한 무속인에게 5000만원을 건넸다. 기도비 명목이었다. 그렇게 무려 10억원을 썼다. A사장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고, 무속인을 사기로 고소했다. 사기죄는 성립될까.

오래된 마을의 골목을 거닐다 보면 점집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인지 21세기인 현재에도 점집이 성업이다. 우리네 인간은 본디 여린 구석이 있다. 따라서 무속인을 찾는 걸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필자는 사법시험 2차 시험을 보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릴 때 결혼한 큰누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디 용한 곳에 가서 점을 봤는데 “너는 중년에 잘 풀린다고 하니 혹시 2차 시험에 낙방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계속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합격을 고대하고 있는 사람에게 할 소리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생을 아끼는 누나의 마음으로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누군가의 예상대로 2차 시험에 보기 좋게 낙방했고, 다시 공부를 계속해 늦은 나이에 합격을 했다. 이런 일을 겪고 보니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말이 전혀 근거 없는 것도 아닌 듯했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두명의 무속인을 고객으로 만났다. 그들은 변호사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미래와 운명을 어떤 방법으로 보는지 설명했다.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건 ‘영업비밀’을 누설하는 것 같아 생략한다. 어찌 됐든 필자는 두 무속인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 분야나 그렇듯 무속인 중에도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필자가 직접 고소장을 작성한 사건을 보자. 건설업체를 운영하는 A사장이 친구의 소개로 점집을 찾았고, 무속인과 친한 사이가 됐다. 무속인은 새로운 공사를 수주하고, 공사 중 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도해 줄 테니 공사당 5000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A사장은 그 말을 믿고 공사를 수주할 때마다 5000만원을 무속인에게 줬다. 이후 A사장은 타운하우스 시행사업을 맡았고, 그 무속인에게 사업을 하면 어떨지 물었다. 무속인은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사업이 잘 되도록 기도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업이 잘 되면 3억원을 자신에게 주고, 우선 1억5000만원을 달라고 했다. A사장은 이 말에 순순히 응했다. 그런데 타운하우스 시행사업은 시작도 못하고 좌초했다. A사장은 그동안 무속인이 했던 모든 말이 거짓이라는 걸 깨들았지만 뒤늦은 후회였다. 무속인에게 건넨 돈만 해도 무려 10억원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속인을 사기로 고소를 했고, 무속인은 벌을 받아야만 했다.

결혼한 지 7년이 지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한 것 때문에 찾아온 이에게 3500만원을 받고 여러번 굿을 해준 무속인을 사기죄로 벌한 대법원 판례도 있다. 무속인이 아기를 갖게 할 능력이 없었다고 본 것이다. 무속인의 기도나 굿이 효험이 없다고 모두 사기죄가 성립되느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굿의 효과가 없다고 무조건 사기죄가 적용되는 건 아니다. 무속인이 의뢰인 마음의 안정을 찾아주기 위해 최대한의 의무를 다했다면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누구나 힘들 때는 무엇인가 의지할 곳을 찾는다. 하지만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을 믿어 보면 어떨까. 잘못된 예언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