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결제대전을 돈싸움이라 했나
결제시장 ‘데이터 수집중’
결제서비스는 금융기관의 전유물이 아니다. 은행이나 카드사뿐만 아니라 통신사ㆍ유통업체ㆍ제조사ㆍ플랫폼업체까지 뛰어들어서다. 결제시장이 결제수수료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것에서 벗어나 금융데이터를 수집ㆍ응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거래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베이는 이를 기회로 삼아 결제시장에 출사표를 던진다. 우리의 무기는 페이팔이 보유한 1억개의 전자지갑(계좌)이다.” 2011년 7월, 존 도나호 이베이 CEO가 실적발표에서 한 말이다. 페이팔은 2002년 이베이가 인수한 미국 온라인 결제서비스다.도나호 CEO의 발언은 헛말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는 결제시장에서 성과를 나타냈다. 2003년만 해도 페이팔의 매출은 4억 달러로 이베이의 전체 매출(22억 달러)의 18%에 불과했다. 9년이 흐른 2012년 페이팔의 매출은 510억 달러를 웃돈다. 이베이 전체 매출(1410억 달러)의 36%를 차지한다. 결제서비스가 이베이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베이의 사례는 두가지를 시사한다. 전자상거래 거래액의 증가와 더불어 결제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모바일 결제가 결제시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모바일 결제거래액은 2009년 256억 달러에서 2012년 1715억 달러로 3년 만에 7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베이와 같은 비非금융기관을 통한 결제서비스 이용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1년 비금융기관 결제서비스 이용건수는 68억5000만건, 이용금액은 54조6787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각각 12.6%, 19.7% 늘어난 수치다.
은행ㆍ카드사를 비롯한 전통적인 금융업체뿐만 아니라 통신사ㆍ휴대전화 제조사ㆍ유통업체ㆍ플랫폼업체가 결제서비스에 뛰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비금융기관이 결제서비스 시장에 뛰어든 건 스마트폰ㆍ태블릿PC 등장으로 모바일 결제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올해 글로벌 모바일 결제 거래액이 3527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모바일 결제서비스 이용자수는 2012년 2억1221만명에서 2016년 4억4792만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모바일 결제는 가맹점 단말기에 휴대전화를 대면 칩에 저장된 정보가 이동통신망을 통해 카드사 등으로 전송되면 결제가 승인되는 구조다. 휴대전화 내부에 칩을 이식했기 때문에 이용자의 편의성이 뛰어나고, 보급력이 탁월하다. 이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모바일 결제서비스를 이용할 것이고, 결제시장의 성장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업계마다 결제서비스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주로 전자지갑 애플리케이션(앱)을 인수(M&A)하거나 전자결제업체와 협업하는 식이다. 미국 3대 통신사인 버라이존ㆍAT&Tㆍ티모바일 USA의 연합체인 ISIS(아이시스)는 전자지갑 서비스 출시를 통해 결제시장에 진입했다. 이들은 전자지갑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결제서비스를 제공하는데, NFC(근거리이동통신)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ISIS가 삼성전자ㆍLG전자 등 휴대전화 제조사와 협업을 맺은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엔 오프라인 결제 역량을 강화하는 데도 나서고 있다. 특히 모카페이는 NFC 외에도 바코드, QR코드 결제를 추가하며 다양한 결제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플랫폼 업체의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구글은 통신사ㆍ제조사ㆍ은행ㆍ카드사와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다. 그 결과 구글은 2011년 5월 NFC 기반의 모바일 전자결제서비스 구글 월렛을 출시했다. 하지만 지원 단말기 부족,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간의 호환성 문제로 시장에서 큰 반응을 일으키진 못했다. 이를 만회하고자 지난해 5월 구글 월렛 서비스와 G메일을 연동한 송금서비스를 선보였다. 송금자가 신용카드를 이용해 송금할 경우 송금액의 2.9% 수수료가 붙는다. 이 서비스를 통해 송금 받은 돈을 사용하려면 수신자는 구글 월렛을 설치해야 한다. 구글 월렛을 확산시키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결제시장 뛰어든 ‘비금융기관’
유통업체는 연합전선을 맺으며 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유통연합체 MCX다. 미국 유통기업 월마트와 베스트바이 등 오프라인 상거래업체가 모였다. 이들은 디지털보안업체 젬알토와 협업을 맺고 전자기갑 앱을 개발하고 있다. 아울러 오프라인 가맹점 확대와 금융권과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MCX는 다양한 오프라인 결제를 위해 NFCㆍ바코드 기술을 지원할 예정이다.
휴대전화 제조사 애플과 삼성전자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애플은 2012년 10월 전자지갑 패스북을 출시했다. 비행기 탑승권ㆍ영화티켓ㆍ매장카드ㆍ할인쿠폰 등을 스마트폰에서 하나로 모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앞서 애플이 출시한 전자지갑 서비스 이지페이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이지페이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아이튠즈 계정으로 액세서리 정도의 물품만 구입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모바일 전자지갑 삼성 월렛을 출시했다. 현재 삼성 월렛은 전국 9만5000여 가맹점에서 결제가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올해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삼성 월렛을 통해 신용카드를 결제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1월 롯데ㆍ삼성ㆍ신한ㆍ현대ㆍKB국민ㆍNH농협 등 6개 카드사로 구성된 앱카드 협의체와 협약을 체결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글로벌 기업들이 결제시장에서 대전을 벌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결제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면 얻을 수 있는 게 많아서다. 우선 온ㆍ오프라인 가맹점이 늘어나면 업체가 얻는 결제수수료가 증가한다. 페이팔의 사례를 살펴보자. 오프라인 유통업체와 협력관계를 확대한 페이팔은 달러 제러럴, 오토 파이트 등 오프라인 가맹점 20여개를 확보했다. 그 결과 미국 전역의 1만8000개에 달하는 오프라인 가맹점에서 페이팔의 결제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현재 페이팔은 온라인 결제시 가맹점에 결제액의 2.2~2.9%의 수수료와 건당 수수료 0.3달러를 부과한다. 페이팔 히어를 통해 오프라인 신용카드 결제를 할 때는 결제액의 2.7%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스마트폰 카메라로 스캔할 경우 결제액의 3.5% 수수료와 건당 수수료 0.15달러를 내도록 한다.
이런 이유로 한편에선 결제수수료가 결제서비스의 핵심이라고 분석한다. 결제수수료 수익이 결제사업의 매출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결제서비스의 본질은 단순히 결제수수료 경쟁이 아니다. 체크카드나 신용카드 기반의 결제시스템이 모바일로 이전돼 결제 편의성이 개선된다 하더라도 전체 결제시장 규모가 가파르게 팽창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결제수수료 기반의 사업모델은 성장의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결제서비스 핵심은 데이터 활용
글로벌 기업들이 결제시장을 선점함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결제서비스는 데이터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민 KT경제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결제서비스에서 획득한 구매내역, 결제빈도, 기호, 성별, 지불여력 등 사용자 데이터를 빅데이터 사업과 연계하면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다”며 “업체들이 NFC를 기반으로 결제서비스를 마련하는 것은 손쉽게 이용자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국내 카드사인 현대카드가 선보인 앱 마이메뉴를 보자. 이 서비스는 이용자에게 결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맛집 등 외식정보를 제공한다. 고객의 성별, 연령대, 직업, 재방문율, 보유카드 혜택을 바탕으로 정보를 세분화하는 것이다. 결제서비스는 더 이상 금융기관의 전유물이 아니다. 결제수수료에 기반한 ‘쩐의 전쟁’이 아니라 ‘데이타의 전쟁’이라서다. 소비자의 금융데이트를 수집하고, 응용하며,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결제서비스 경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를 확보하려는 글로벌 결제대전은 이미 시작됐다.김건희 더스쿠프 기자 kkh4792@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