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자(犬子)가 어떻게 부잣집 따님을 홀렸는고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정면승부①

2012-07-09     심상훈

사마상여는 출중한 거문고 솜씨로 부잣집 딸을 꾀어내 성공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史記列傳)에 등장할 정도다. 그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글 짓는 재주도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중국 한나라 촉군 성도 출신인 그의 아명(兒名)은 견자(犬子)였다. 당시에는 의학이 발달하지 못해 단명 하는 사람이 많았다. 단명을 피하고자 ‘개새끼’처럼 저승사자도 듣기 싫어하는 더러운 이름을 지어 자녀의 무병장수를 기원하곤 했다.그래야 아이가 별 탈 없이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란다고 믿었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100년 전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조선(朝鮮)만 하더라도 임금인 고종(高宗)의 아명 개똥(介同)이가 아니었던가.아무튼 사마상여는 어느새 성인이 된다. 관례(冠禮)에 따라 드디어 자(字)를 받는다. 그의 자는 ‘장경(長卿)’이었다. 자는 호(號)와 조금 다르다. 당사자가 직접 짓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자는 원래 가족이나 친지가 함께 모인 성인식 축하연 자리에서 혹은 공부하는 중에 성인(남자 20세, 여자 15세 기준)이 되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부모나 스승이 지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부모가 염원을 담거나 스승이 제자의 앞날에 대한 의미를 살펴 지어줬다.장경의 경우는 스승보다 부모와 친척의 입김이 더 세게 작용한 듯하다.

자를 보면 그렇다. 자를 풀어보면 ‘벼슬길이 길게~’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스승이 된 입장에서 이런 자를 내리는 것은 매우 낯간지러운 일이다. 그래서 장경은 그 부모의 바람이 담긴 것으로 해석하는 게 마땅하다. 이로써 집안 배경이 그리 썩 좋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사기열전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에는 집안 배경을 설명하거나 부모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사기열전의 기록에 따르면, ‘어느새 성인이 된 장경은 매관(買官)을 통해서 많은 돈을 내고 ‘낭’이 되었다’는 대목을 만날 수 있다. 당시엔 너나 할 것 없이 벼슬을 해야 연명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돈을 내고 벼슬을 사는 것을 두고 반드시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오죽하면 벌금 낼 돈이 없어 남자로서는 차마 입에 담기도 치욕적인 궁형을 사대부인 사기(史記)의 지은이 사마천(司馬遷, BC 145~86)도 스스로 자청했을까. 한미한 집안 소생 ‘사마상여’공신이 너무 많았던 한나라 국가 재정(효경제)은 그야말로 뻔했다. 그럼에도 구름처럼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게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벼슬을 팔았다’가 아니라, ‘벼슬을 얼마든지 원하면 돈을 내고 살 수 있었다’고 전한다.장경도 마찬가지로 전 재산을 톡톡 털었을 거다. 집안도 올인 했을 거다. 변변치 못한 한미한 집안 출신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장경의 뜻대로 벼슬길이 술술 풀리진 않았다. 탄탄대로가 되지는 못했다.그러다가 장경은 눈높이를 낮춘다. 유세객 신분이 돼서다. 유세객으로 입에 풀칠이나마 할 수 있었다. 잠깐이었으나 덧없이 좋았던 호시절이었다. 양나라 효왕이 살아있을 때에만 그랬다.

하지만 후원자 격인 효왕(한나라 효경제의 동생)이 죽고 말았다. 이제 할 수 없어, 고향인 촉군 성도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빈털터리로 말이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게 있다면 효왕이 선물해 준 ‘녹기(綠綺)’ 뿐. 녹기는 훗날 장경이 탁문군을 출중한 연주로 유혹할 때 탔던 그 거문고의 이름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