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까지 침묵시킨 ‘이별別曲’
김현정의 거꾸로 보는 오페라
2013-12-31 김현정 체칠리아
Telephone의 여주인공 루시를 통해 우리는 젊고 싱싱한 마릴린 먼로의 웃음을 맛봤다면 이 오페라에선 그와 정반대의 불운한 여주인공을 볼 수 있다. 여주인공은 무슨 일을 겪을까. 다음은 줄거리 요약이다.
그토록 사랑하던 두 남녀가 영원히 헤어지기로 결심한다. 작별 기회를 잡지 못했던 두 남녀는 마지막으로 전화를 통해 작별인사를 한다. 여인은 남자에 대한 열정과 후회와 분노가 가득한 말을 토해내고 전화를 받고 있는 남자는 응답을 하지 않는다. 여인을 배신한 죄책감에서일까. 여인이 대화를 중단할 때만 남자는 아직도 여인의 말을 듣고 있다는 듯 전화기를 들고 있음을 표시한다. 전화통화가 중단될 정도의 침묵도 여러번 이어졌지만 두 사람 중 누구도 마지막 이별의 한마디를 꺼내지 못한다. 불신, 항의, 호소, 때론 거짓 냉담과 절망 가득 찬 악다구니에 지친 여인은 그만 침대에 쓰러지고 만다.
이제 두 사람 사이에는 소리 없이 연결되어 있는 전화기만 덜렁 남았다. 여인은 그제야 남자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을 것을 강요한다. 오페라는 여인의 비명과 거친 숨소리를 마지막으로 뿜어내면서 여인이 땅바닥에 쓰러지는 것으로 끝난다.
1959년 파리 오페라 코믹극장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원작 장 콕토의 단막 드라마를 소재로 삼았다. 이후 잉그리드 버그먼의 남편이었던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이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콕토는 사람들 사이의 간접 대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들은 전화기를 통해서 마지막 이별의 대화를 나눈다. 신의를 지키지 못한 남자 주인공 입장에서 전화는 ‘냉소적’이지만 버림받는 여인에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경험하게 한다. 요즘 같으면 휴대전화 메시지로 간단히 이별을 알릴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엔 전화로 이별을 알렸으니 사뭇 세련된 도시적인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았을까.김현정 체칠리아 sny409@hanmail.net